박준현 삼성증권 사장(59)은 요즘 한국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다. 최근에도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3주에 걸쳐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박 사장은 "올해는 1년 365일 중 3분의 1 이상을 해외에서 보낼 것 같다"고 말한다.

박 사장의 해외 출장이 잦아진 이유는 '2015년 아시아 톱5 증권사'를 꿈꾸는 삼성증권의 비전과 맞물려 있다. 홍콩에 있는 삼성증권 아시아지역본부 업무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올해는 특히 홍콩이나 한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영업지원 업무가 많아졌다. 글로벌 증권사 도약을 꿈꾸는 삼성증권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증권은 박 사장 취임 이후 본격화한 글로벌 투자은행(IB) 및 국내 자산관리 시장 공략에 힘입어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2008년 6월5일 4조8790억원이던 삼성증권의 시가총액은 지난 25일 기준 5조7812억원으로 18.49% 불어났다. 전체 고객 예탁자산 규모는 2008년 6월 말 127조원에서 작년 말 197조원으로 55.11% 증가했다.

박 사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리테일(소매) 영업에 기반을 두고 IB 업무를 접목해 나가는 '메릴린치' 모델의 글로벌 투자은행이 되겠다"고 밝혔다.

▼2010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영업이익이 증권업계에서 유일하게 직전 사업연도보다 증가했습니다.

"랩어카운트와 주가연계증권(ELS) 등 자산관리 주요 부문의 실적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덕분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변화하는 투자자들의 니즈에 맞춰 자산관리 영업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해 왔고,이 같은 노력이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봅니다. "

▼랩어카운트 등 금융투자상품에 부과되는 각종 수수료 인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도 이 같은 좋은 실적을 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삼성증권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펀드 투자자들이 '악몽'을 겪은 직후인 2009년 초 자문형 랩어카운트(자문형 랩)를 처음 선보여 지난해 자본시장을 선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영업환경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한발 앞서 간다면 분명히 블루오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개인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이 20%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금융투자상품 판매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인구 고령화와 저금리로 인해 투자 수요가 꾸준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간접투자 시장의 '파이'는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입니다. "

▼한국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성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꿈"이라며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골드만삭스가 세계적인 IB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특유의 조직문화와 뛰어난 인재 활용 역량도 있겠지만,그동안 서구 중심으로 짜여진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막강한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가진 서구 IB가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로 사람과 자본이 몰리고 있습니다. 한국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단지 자본 규모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세계적인 IB가 될 수 없습니다. 우선 정밀한 리스크 관리를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 경험을 늘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삼성증권은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영향력이 중국 등 핵심 시장에서 막강한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

▼글로벌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활용하기 위해 홍콩 아시아본부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홍콩에 현지 인력 60여명으로 법인을 새롭게 출범시켰고,지난 1년6개월 동안 인력을 110여명으로 늘렸습니다. 일부 지원인력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홍콩 현지의 톱 IB 출신들입니다. 아시아 최고의 증권사가 되겠다는 삼성증권의 비전에 우수한 인재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현지 법인고객 계좌가 출범 당시보다 10배 넘게 증가했고,IB 부문에서도 한국 증권사 최초로 독일 기업을 홍콩 증시에 상장하는 등 3조40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성공시켰습니다. 홍콩 사업은 앞으로 2~3년 뒤에 연평균 순매출이 2000억~3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우리투자증권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외 증권사에 대한 인수 · 합병(M&A) 계획은 어떻습니까.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지점망 등에서 크게 차별화돼 있지 않다고 봅니다. 삼성증권과 우리투자증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M&A에 나서는 것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 실사까지 했지만 실제 인수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수년 내에 리먼과 같은 글로벌 증권사가 매물로 나올 경우 어떻게 할 것입니까.

"금융은 결국 사람과 네트워크가 핵심 역량입니다. 리먼이 매물로 나왔던 2008년 당시에는 삼성증권의 핵심 역량이 글로벌 증권사를 인수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죠.하지만 이제는 회사의 전반적 역량이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고,홍콩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먼과 같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M&A시장에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인수한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역량을 차근차근 확보해 간다면 충분히 '다음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삼성증권의 궁극적 지향점은 뭔가요. 한국판 골드만삭스입니까.

"2020년 삼성증권의 비전은 '글로벌 톱10'입니다. 홍콩 싱가포르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핵심 지역을 주무대로 전 세계 투자자를 상대하는 금융회사가 되겠다는 것이지요. 10년 뒤에는 IB는 물론 자기자본투자(PI) 트레이딩 등 증권업 전 분야에서 아시아 핵심 플레이어로 도약할 것입니다. 처음 CEO로 부임했을 때는 이 같은 목표가 굉장히 멀게 느껴지기도 했지만,이제는 조금씩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공격적인 PI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운 골드만삭스보다는 자산관리 등 리테일 업무 기반을 바탕으로 IB를 접목해 가는 메릴린치 모델이 삼성증권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