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21세기를 융합과 콘셉트의 시대로 정의했다. 단일 직종의 사람들이 단순 반복작업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던 과거 농경시대나 산업시대와 달리,21세기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시 ·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교류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융합혁명 시대 기업의 핵심경쟁력은 새롭고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융합 역량이 좌우할 것이다.

지난 3월 정부가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융합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인프라를 갖춘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선진국 대비 50~80% 수준의 경쟁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융합기술기획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우리나라의 융합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50~8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의 상용화 진전이 높은 융합산업의 경우는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경쟁자의 진출이 비교적 용이하다. 따라서 가격경쟁 등 기존 산업 내 경쟁 양상이 동일하게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고부가가치 창출 융합산업의 경우는 해외 선진국가 및 기업들이 시장 선점을 통해 높은 산업 집중도를 형성하고 있는데다 기술 장벽도 높다. 때문에 후발 주자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구조가 확립돼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산업융합의 구조적 전개 양상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융합 가치창출 정도-저(低)
융합 산업화 정도-고(高)

이 영역은 주로 주력산업에 해당하는 것들로 조선 통신 생활용품 등이 속한다. 수요자의 편의 향상에 기반을 두고 기존 기능을 통합해 제공하는 시장고도화형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규모로 발달한 단일 산업의 자사 제품 혹은 서비스의 '단순 결합' 수준으로 이업종 간 융합을 통한 신규 가치창출 수준이 낮으며,기술적 진입 장벽도 높지 않다. 예컨대 이동식 해양플랜트 설비인 드릴십이 그런 사례다. 기존 플랫폼 형태의 고정식 원유시추 설비의 개념을 벗어나 유전 개발이 필요한 여러 해역을 옮겨 다니며 시추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국내 대형 조선사에서 시장 독점체제를 유지 중이지만 핵심 기자재의 수입의존도는 높다.

(2) 융합 가치창출 정도 중(中)
융합 산업화 정도 중(中)


자동차 섬유 기계설비 석유화학 등의 산업 간 · 동종 간 '단순 결합'을 넘어 이종간 '융합'이 이뤄져 제품의 컨셉트와 활용영역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기술진화형 융합 형태다. 주로 기존 주력제품의 성능 개선을 목적으로 부가서비스가 융합되는 형태로 진행되지만,연계되는 다양한 중소기업의 고부가가치 기초부품의 생산,서비스 R&D 및 원천기술의 개발은 미비하다.

따라서 완성품 제조 집중 형태를 벗어나 융합과정상의 고부가가치 원천기술과 부품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 · 개발(R&D) 투자와 대 · 중소기업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핵심 기술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지능형 자동차는 IT(네트워크/GPS)-NT(센서/반도체)-BT(생체정보인식)-HT(감성공학/인터페이스) 등을 결합해 운전의 효율성,안정성 확보,자동 운행 등을 가능케 하는 미래형 자동차다. 스마트의류는 IT(직물형 회로보드/통신기술)-NT(나노와이어 소재 기술)-HT(인터페이스) 등의 융합으로 심박수,체온 등 건강상태 점검,안전보안,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글로벌 의류 브랜드 부재와 패션제품 수출이 중저가 제품 중심의 해외 OEM에 치중해 있어 초기시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3)융합 가치창출 정도-고(高)
융합 산업화 정도 저(低)


이 영역은 전자 바이오 소재 항공 등의 산업으로 다양한 제품/서비스의 결합이 새로운 제품/서비스 영역을 지속적으로 탄생시키는 '신시장 창출형' 융합이다. 융합의 참여 주체에 제한이 없으며 특정 제품 중심의 수직적 결합이 아닌 각 제품 및 서비스 간 유기적인 수평 결합이 자유롭게 이뤄지며,다양한 산업에 제한 없이 응용될 수 있는 혁신적 융합 기술도 이 영역에서 주로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장기 투자를 통한 R&D의 부족으로 단기 시장화 상품에 대한 투자의 쏠림 현상이 존재하는 게 문제다. 특정 기업 중심이 아닌 다양한 참여자의 제품 및 서비스 간 수평적 융합이 유기적으로 발생하는 플랫폼과 다양한 콘텐츠 확보 측면에서 아직까지는 많은 부분 개선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휴대폰을 이용,인터넷-애플리케이션-미디어 등 다양한 콘텐츠 접속이 가능하다. 콘텐츠 간 상호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 속에서 하드웨어를 위한 기타 서비스의 존재가 아닌 기타서비스를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하드웨어로 변화했지만,OS 플랫폼 및 콘텐츠 생태계 구현은 풀어야 할 과제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OS-애플리케이션-스토리지 등의 다양한 컴퓨팅 자원을 직접 구매-설치-운영할 필요 없이 웹을 통해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요금을 지불하는 컴퓨팅 기술이다. 그러나 외국 대기업 대비 핵심 기술 보유 업체가 거의 없어 아직까지는 기술력 격차가 존재한다. 응용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핵심 솔루션 개발을 위한 생태계 활성화와 개인 및 기업정보 관리에 대한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4)융합 가치창출 정도 고(高)
융합 산업화 정도 고(高)


이 영역은 주로 스크린골프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생겨나고 있다. 중소업체가 기존 대규모 사업자에 종속된 부속 제품 및 서비스의 형태를 넘어 융합을 통해 자생 가능한 수익 사업모델을 창출한 성공사례로도 평가된다. 혁신적 기술 개발 없이도 기존 서비스와 제품 간 창조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및 시장 창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스크린 골프는 기존 실내 골프 연습장에 스크린 시뮬레이션 기술과 센서 기술 등을 융합시킨 모델이다. 가상 체험 및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통합됐으며 신규 시장 창출 및 선점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구조적 전개 양상 분석 시사점

저부가가치 영역에서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전되는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로는 융합의 주체가 '단일 기업'에서 '다종 기업'으로 변화한다. 즉 단일 기업의 주도적 융합형태에서 다종기업이 제공하는 작은 가치 간 유기적 융합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또 단일 기업의 '독자적/수직적 융합'에서 다종기업 간 '협업적/수평적 융합'으로 진화하며 제품 자체보다 파생되는 서비스로 가치의 무게 중심이 이동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창조적 혁신 수준의 기술이 탄생해 다양한 종류와 규모의 다른 산업에 응용되는 형태다. 다른 산업에 응용 가능성을 부여하는 근원적 가치가 창출되는 경우 단기 상용화를 통한 수익 창출의 도구적 성격보다 가치 창출의 근원적 목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이 대기업(주력산업,1영역) 중심으로 일부 성능 개선을 위한 제한적 융합에 그치고 있다. 또 융합에 참여하는 중소업체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중도 낮다. 조기 상용화가 가능한 제품에 투자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창조적 기술을 개발한 기업의 초기 자금 조달,장기적 관점의 R&D,일정단계 후 M&A(인수 · 합병) IPO(시장공개) 등을 통해 가치 창출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김 억 딜로이트컨설팅 이사

보스턴대 학사(경영학,수학)
RPI(렌슬러폴리테크니크인스티튜트) 석사 및 박사(산업공학)
삼성SDS 책임컨설턴트
언스트앤드영 보스턴사무소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