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 종로에 사는 20대 남자는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해 불태운 뒤 충전 도중 폭발했다는 신고를 했다. 제조업체 사옥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나는 휴대전화 폭발 피해자'라는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했다. 거짓 내용을 언론사에 제보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497만원의 보상금을 타냈다. 결국 명예훼손 및 사기죄로 징역 1년형에 처해졌다.
악덕 소비자들의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지난해 '쥐식빵 사건'이 터져 관련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더니 대형 식품업체의 육가공 제품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는 이유로 2억원을 요구한 사례도 나왔다. 공연 입장권을 잃어버렸다며 재발급 받아 이중으로 팔아넘기는 경우까지 있다. 다짜고짜 소송부터 제기해 놓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는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다. 아무리 철저하게 생산과정을 점검해도 불량품이나 이물질을 모두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정신적 피해 보상이나 치료비로 거액을 달라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일단 외부에 알려지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업체가 큰 타격을 받는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협상에 나선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8년 300여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소비자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경험한 곳이 87.1%에 달했다. 식품업체는 무려 94.1%가 악덕 소비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헐값에 중고TV를 사 고장낸 뒤 제조업체를 협박한 일당 35명이 구속됐다. 환불규정을 악용해 200여 차례에 걸쳐 6억여원을 뜯어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환불 공갈단'쯤 되겠다. 초과이익공유제,억지춘향식 동반성장,연기금을 통한 기업통제 시도에 악덕 소비자까지 설치고 있다. 이러다간 기업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나오게 생겼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