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전례 없는 수사가 전례 없는 공소장을 낳았다. 검찰은 지난 25일 증권사로부터 주식워런트증권(ELW) 투자와 관련,전산상 특혜를 받은 스캘퍼(초단타매매자)들을 사법 사상 처음으로 기소했다. 파생상품인 ELW와 증권 전산시스템 구조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스캘퍼 등 관련 용어도 생소하다. '뭐가 문제고,왜 죄가 되는지'를 법원에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런 고민 끝에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은 한 편의 '친절한 금융 논문' 수준이라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27일 검찰에 따르면 이번 공소장에는 각주처럼 처리된 용어설명만 20개가 있다. 작성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이 사건을 담당한 박성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 검사(사진)가 맡았다. 황규경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는 "용어설명이 20개나 들어가는 경우는 기술 내용이 복잡한 특허 관련 공소장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당장 ELW라는 용어가 나오는 공소사실 부분 첫 장부터 시작된다. 설명 내용도 곳곳에 괄호'( )'로 부연설명을 하는 등 이례적으로 상세하고 친절하게 기술돼 있다. "미래의 특정시점(만기)에 미리 정해진 가격(행사가격)으로 기초자산(삼성전자 등 특정주식이나 KOSPI 200 주가지수)을 사거나(콜옵션) 팔거나(풋옵션)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금융투자상품으로…"라는 식이다.

스캘퍼에 대해서는 "주식이나 파생상품을 하루에도 최소 수십 번 이상 거래한다"고 설명하면서 "슈퍼 메뚜기로도 불린다"고 덧붙였다. ELW 투자를 하면서 증권사 직원에 1억9500만원을 건넨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손모씨의 직업란에는 아예 직업 자체가 스캘퍼로 명시돼 있다.

법무법인 디지털 밸리의 조준행 변호사는 "공소장에 스캘퍼가 직업으로 명시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의 현장 속어도 설명 대상이다. 스캘퍼들이 구성한 팀의 이름인 '여백팀'에 대해서는 "서울 여의도 백화점에 사무실을 두고 스캘핑을 해 이 과정에서 '여백팀'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기술했다.

스캘퍼들의 행위가 '왜 범죄가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주석에서 비유까지 들어가며 설명했다. 스캘퍼들이 일반 투자자보다 앞서 증권사로부터 주식 등 기초자산 시세정보를 먼저 받은 것에 대해 "시험을 볼 때 남들보다 미리 시험지와 문제 힌트까지 받는 것과 같다"고 적시했다. 증권사가 수천만 명의 일반 투자자 원장 데이터베이스(DB)와 소수의 스캘퍼 DB를 분리해 고객 계좌 및 거래정보를 검색한 것에 대해서는 "자료 검색에 소요되는 시간은 검색 대상 자료의 크기에 절대적으로 비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증권사와 스캘퍼가 왜 공생관계를 맺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ELW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2010년 상반기 한국 ELW 시장 월평균 거래대금이 약 30조원인데 '여백팀'의 월평균 거래대금은 14% 수준인 4조3000억원이어서 증권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스캘퍼들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10일 손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때도 박 검사가 직접 법원을 찾아가 영장 청구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증권사 10개사에 이어 지난 25일 KTB증권을 추가 압수수색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