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후 경영권 파는 '설거지 M&A'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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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텍전자, 前 최대주주 횡령 드러나 상장폐지
횡령 덮는 조건으로 싸게 넘겨…투자자들만 피해
횡령 덮는 조건으로 싸게 넘겨…투자자들만 피해
"회삿돈 150억원을 횡령했는데 어떻게 덮어 줄 겁니까?"
코스닥 기업 인수를 모색하던 박모씨(52)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재무제표 상으로 건실해 보이는 회사가 인수 · 합병(M&A) 시장에 나왔다. 최대주주를 만났더니 횡령사실을 어떻게 덮어줄 수 있는지부터 물어왔다. 박씨는 "그 대가로 경영권 인도가격을 할인해 주겠다고 해 없었던 일로 했다"며 "최대주주의 횡령으로 곪아 가는 회사가 코스닥에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에 이전 최대주주의 횡령혐의가 덮인 상태에서 거래되는 '좀비 상장사'가 늘어나고 있다. 횡령으로 대부분 자산이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거래되다가 갑자기 상장폐지돼 애꿎은 소액주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횡령사실을 1년 후에 공시
유니텍전자는 지난 18일 '횡령에 따른 감사의견 거절' 사유로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교체된 것은 작년 3월.1년여가 지난 2월 전 최대주주가 회삿돈 100억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했다. 담당 회계법인의 '감사의견거절' 발표를 한 달 앞둔 때였다. 뒤늦게 횡령사실을 발견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해석은 다르다. 한 소액주주는 "회사 인수 때 실사를 했는데도 횡령사실을 1년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을 알고 있다가 회계법인 감사로 상장폐지가 임박하자 뒤늦게 공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른 소액주주는 "현 최대주주까지 챙길 것은 다 챙긴 뒤 회사를 상장폐지시켰다"고 주장했다. 인수 당시 최대주주 지분율은 21.10%에서 작년 말 13.81%로 감소했다.
◆전 · 현 최대주주가 모두 횡령
코스닥 상장사인 네이쳐글로벌은 지난 1월 상장폐지됐다. 경영권이 바뀐 것은 작년 4월.새 주인이 된 박모씨는 풀무원 경영진과의 친인척 관계를 부각시키며 주가 띄우기에 나섰다. 풀무원에 납품할 예정이라며 각종 식재료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13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편취하고 56억원어치의 타법인 주식을 임의로 처분해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횡령은 전 최대주주 때도 발생했다. 전 최대주주는 리조트 투자를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챙겼다. 2009년 말 재무제표에서 360억원에 이르렀던 현금성 자산은 두 최대주주의 횡령으로 대부분 증발했다. 작년 8월 반기보고서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낸 회계법인은 회사 소유의 현금 266억원과 다른 상장사 주식 56억원어치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횡령 사실 발생을 묻는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에 해외 장기출장을 이유로 세 차례나 답변을 회피하며 피해 다녔다. 소액주주들은 "전 · 현 최대주주가 대부분 회삿돈을 횡령해 껍데기 회사로 전락했는데도 우리만 몰랐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횡령거래 적발 장치 필요
시장 참여자들은 전 최대주주의 횡령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코스닥 기업을 인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횡령액만큼 인수금액을 할인받은 다음 각종 호재를 발표하며 주가를 부양한 뒤 주식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횡령이 발생한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상장폐지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된 2009년 2월 이후 더 심해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계기업 M&A로 유명한 정모씨는 "횡령 사실을 밝히면 회사가 상장폐지되므로 인수하는 측에서도 섣불리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M&A는 연간 감사의견 제출이 마무리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며 "회사를 인수한 쪽이 다음 감사의견 제출 전까지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 상장폐지실질심사제도
재무제표 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분식회계,횡령 · 배임 등을 저지른 부도덕한 상장사를 퇴출시키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도입한 제도.거래소 담당자와 변호사,회계사,학계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회'에서 상장 유지 적격 여부를 심사한다. 코스닥시장에서는 2009년 2월부터,유가증권시장에서는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코스닥 기업 인수를 모색하던 박모씨(52)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재무제표 상으로 건실해 보이는 회사가 인수 · 합병(M&A) 시장에 나왔다. 최대주주를 만났더니 횡령사실을 어떻게 덮어줄 수 있는지부터 물어왔다. 박씨는 "그 대가로 경영권 인도가격을 할인해 주겠다고 해 없었던 일로 했다"며 "최대주주의 횡령으로 곪아 가는 회사가 코스닥에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에 이전 최대주주의 횡령혐의가 덮인 상태에서 거래되는 '좀비 상장사'가 늘어나고 있다. 횡령으로 대부분 자산이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거래되다가 갑자기 상장폐지돼 애꿎은 소액주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횡령사실을 1년 후에 공시
유니텍전자는 지난 18일 '횡령에 따른 감사의견 거절' 사유로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교체된 것은 작년 3월.1년여가 지난 2월 전 최대주주가 회삿돈 100억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했다. 담당 회계법인의 '감사의견거절' 발표를 한 달 앞둔 때였다. 뒤늦게 횡령사실을 발견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해석은 다르다. 한 소액주주는 "회사 인수 때 실사를 했는데도 횡령사실을 1년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을 알고 있다가 회계법인 감사로 상장폐지가 임박하자 뒤늦게 공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른 소액주주는 "현 최대주주까지 챙길 것은 다 챙긴 뒤 회사를 상장폐지시켰다"고 주장했다. 인수 당시 최대주주 지분율은 21.10%에서 작년 말 13.81%로 감소했다.
◆전 · 현 최대주주가 모두 횡령
코스닥 상장사인 네이쳐글로벌은 지난 1월 상장폐지됐다. 경영권이 바뀐 것은 작년 4월.새 주인이 된 박모씨는 풀무원 경영진과의 친인척 관계를 부각시키며 주가 띄우기에 나섰다. 풀무원에 납품할 예정이라며 각종 식재료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13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편취하고 56억원어치의 타법인 주식을 임의로 처분해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횡령은 전 최대주주 때도 발생했다. 전 최대주주는 리조트 투자를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챙겼다. 2009년 말 재무제표에서 360억원에 이르렀던 현금성 자산은 두 최대주주의 횡령으로 대부분 증발했다. 작년 8월 반기보고서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낸 회계법인은 회사 소유의 현금 266억원과 다른 상장사 주식 56억원어치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횡령 사실 발생을 묻는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에 해외 장기출장을 이유로 세 차례나 답변을 회피하며 피해 다녔다. 소액주주들은 "전 · 현 최대주주가 대부분 회삿돈을 횡령해 껍데기 회사로 전락했는데도 우리만 몰랐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횡령거래 적발 장치 필요
시장 참여자들은 전 최대주주의 횡령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코스닥 기업을 인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횡령액만큼 인수금액을 할인받은 다음 각종 호재를 발표하며 주가를 부양한 뒤 주식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횡령이 발생한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상장폐지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된 2009년 2월 이후 더 심해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계기업 M&A로 유명한 정모씨는 "횡령 사실을 밝히면 회사가 상장폐지되므로 인수하는 측에서도 섣불리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M&A는 연간 감사의견 제출이 마무리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며 "회사를 인수한 쪽이 다음 감사의견 제출 전까지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 상장폐지실질심사제도
재무제표 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분식회계,횡령 · 배임 등을 저지른 부도덕한 상장사를 퇴출시키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도입한 제도.거래소 담당자와 변호사,회계사,학계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회'에서 상장 유지 적격 여부를 심사한다. 코스닥시장에서는 2009년 2월부터,유가증권시장에서는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