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꾼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상장폐지되면 투자자들은 투자금액을 전부 날리게 된다. 하지만 정작 횡령꾼들은 돈을 챙기고 빠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제도상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법은 '고의 상장폐지'다. 회계감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수법으로 일부러 '감사의견거절'을 받은 뒤 회사를 상장폐지시키는 방법이다. 지난 12일 상장폐지된 포휴먼은 담당 회계법인에 재무제표를 비롯한 회계자료 일체를 제공하지 않았다. 증권가에서는 "경영진이 횡령 사실을 숨기기 위해 회사 장부를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횡령 이후 상장폐지까지를 전문적으로 책임지는 '설거지꾼'도 등장한다. 최대주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회사가 상장폐지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지난해 11월 상장폐지된 A사는 설거지꾼이 5월부터 들어와 활동했다. 최대주주가 횡령을 하고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와 기존 이사진을 내쫓고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개최 요구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틀어막았다.

회사를 제3자에게 넘기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루티즈를 통해 우회상장한 금성테크는 증시 입성 3개월이 채 못돼 거래가 정지됐다. 회사의 재무상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전 최대주주와 이전 최대주주의 횡령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코스닥 업계 관계자는 "횡령을 덮기가 여의치 않으면 자본시장 사정에 어두운 기업가에게 회사를 넘긴 뒤 도주할 시간을 벌기도 한다"고 말했다.

횡령꾼에 대한 미약한 당국의 처벌의지가 횡령을 부채질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코스닥에서 상장폐지된 20개 회사에 대해 추가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 지지부진한 상태다. 바지사장 역할을 맡은 강모씨가 해외로 도주한 아구스 등 해당 회사들의 대표가 잠적해 수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아구스 소액주주대표인 조성재 씨는 "바지사장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횡령을 주도한 '몸통'에 대한 수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한번에 수백억원을 챙기는 횡령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허술하다"고 말했다.

결국 제도적 · 법적인 규정을 강화해 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사고 파는 횡령꾼들을 퇴출시켜야만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코스닥시장의 신뢰가 살아난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