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주주권 강화' 논란] 기업들 "내년 4월 총선 전후 '경영 빙하기'…아무 일도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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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때리기 시나리오' 재계 공포
개정 상법 발효로 기업 경영에 이중삼중 '족쇄'
연기금, 이사 추천 요구…이익공유제 강행 우려
개정 상법 발효로 기업 경영에 이중삼중 '족쇄'
연기금, 이사 추천 요구…이익공유제 강행 우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암담합니다. 아예 내년 달력에서 3월과 4월 이후를 지워버릴 수도 없고…."(4대 그룹 임원 A씨)
대기업 사이에 '2012년 3~4월'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공정사회 아젠다를 들고나온 뒤 하나둘씩 발표된 '대기업 때리기' 정책이 내년 봄 한꺼번에 시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이 내년 4월로 잡혀 있는 만큼 청와대와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반(反)대기업 분위기를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기업 의사결정 시스템이 올스톱될 수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재계 "내년 봄은 봄이 아니다"
대기업들은 지금 분위기로 볼 때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가 빈말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3월 주총 시즌엔 본보기 차원에서라도 일부 대기업을 직접 견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본때를 보여야 할 대기업에 대해선 공적 연기금들이 힘을 합쳐 핵심 경영 관련 안건을 부결시키는 실력 행사에 나설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대기업의 정부 눈치보기의 강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계열사 간 거래) 확대,준법지원인제 도입,회사의 사업 기회 유용 금지 등을 담은 개정 상법이 내년 4월 발효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다.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 확대는 이사와 주요 주주의 친인척까지 회사와 거래하려면 이사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으로 일부 대기업은 1년 내내 이사회를 열어야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이사와 주요 주주의 직계가족은 직영영업소에서 차를 살 때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준법지원인제는 법조인 일자리를 챙기기 위해 기업 부담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회사의 사업 기회 유용 금지 조항에 따르면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한 신규 사업 진출이 어려워진다.
여기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들고나온 초과이익공유제도 조만간 윤곽을 드러낸 뒤 내년 초부터 본격 도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동반성장위는 현재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을 위한 실무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을 놓고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미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고 정권은 이를 '즐기는' 모양새로 재계는 보고 있다.
◆오도된 공명심인가
재계에는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에 정교한 밑그림이 있는 것 같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곽 위원장이 지난 26일 "대기업의 관료주의 견제를 위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독려하겠다"고 발언한 지 하루 만인 27일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재벌이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개발독재 시절 이상의 공룡이 되고 있고 재벌 속에 재벌관료주의의 폐해가 극심하다"며 곽 위원장을 거들고 나선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상법 개정,연기금 주주권 행사,국세청 공정위의 기업 조사 등이 일련의 흐름을 갖고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대기업으로선 내년 한 해 정치권 눈치나 보면서 무위도식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나 개정 상법의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 확대,회사의 사업 기회 유용 금지 조항 등은 대기업 경영을 기업 경영자가 아니라 연기금과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는 더 이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말 안 듣는 기업은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며 "1970~80년대 정경유착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김수언/조재희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