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FRS(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 본격 도입 첫 해의 첫번째 '어닝시즌'이 우려했던 대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상장사들의 지난 1분기 실적이 속속 발표되고 있으나 통일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자회사를 묶은 연결 K-IFRS을 적용한 실적을 내고 있는데 반해 상당수 중소기업은 자회사를 뺀 별도 실적을 발표 중이다.

올 1분기 실적은 K-IFRS을 적용했으면서 그 비교 대상이 되는 전분기, 혹은 전년 동기는 기존 K-GAAP(한국회계기준) 실적인 경우도 있다. 회계 기준이 다르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이를 관리해야 할 금융 당국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어서 투자자들이 '알아서' 분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년 대비 큰 폭 성장?…회계기준 다르면 의미 없어

이달 중순 휴대폰 부품업체 크루셜텍은 크게 개선된 실적을 발표했다. 올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각각 135.7%와 221.6% 급증한 701억원과 89억원이라고 밝혔다. 실적이 나온 당일 이 회사 주가는 7% 넘게 급등했다.

하지만 크루셜텍의 올 1분기 실적은 K-IFRS, 전년동기 실적은 K-GAAP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비교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후 이엘케이 슈프리마 바이오스페이스 비엠티 웰메이드스타엠 파트론 등의 코스닥 기업이 크루셜텍과 비슷하게 K-IFRS와 K-GAAP 실적을 혼용했다.

상장사의 영업실적 공시에는 이런 내용이 '기타 투자판단에 참고' 사항으로 대부분 기재돼 있으나, 상당수 투자자들은 이를 모르고 넘어가거나 알더라도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분기 영업실적 공시를 총괄하는 한국거래소가 현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IFRS와 K-GAAP의 실적 혼용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코스닥시장본부 공시총괄팀 관계자는 "실적공시에는 어떤 회계기준을 적용했는지 제대로 밝힐 것을 기업들에 요구하고 있다"며 "다만 당기의 비교 대상이 되는 전분기, 혹은 전년동기 실적을 IFRS로 변화하라고까지 권고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분기 실적은 공정공시 사항으로, 거래소에서 관련 자료를 먼저 받아본 뒤 이를 공시토록 지도하고 있다.

◆자산 2조원 이하면 별도로 실적 공시해 더 혼란

별도 K-IFRS로 실적을 내는 것도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K-IFRS가 전면 도입됐지만, 자산규모 2조원 미만 상장사는 2013년까지 2년간 한시적으로 분ㆍ반기 보고서를 연결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로 작성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6일 실적을 발표한 SKC의 경우 대기업이지만 자산규모가 2조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실적을 발표했다. SKC의 작년 말 자산규모는 1조9485억원이다.

SKC의 지난 1분기 K-IFRS 순이익은 30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순이익에는 SKC가 지분 77.1%를 보유한 SK텔레시스는 물론, SKC솔믹스 SKC에어가스 등 자회사 실적이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이전까지 SKC는 자회사 실적을 지분법 이익으로 순이익에 반영해왔다. 따라서 이번 별도 K-IFRS 실적과 K-GAAP으로 작성한 이전 순이익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년 뒤에는 자회사 실적을 반영한 연결 K-IFRS 실적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작년과 올해 실적 기준이 다르고, 2년 뒤 실적 기준이 또 달라지는 것이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시적이긴 하지만 기업 분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시계열의 일관성이 깨진 것은 문제다"고 지적했다.

12월 결산법인이 아닌 상장사는 K-IFRS 적용이 더 늦어지게 된다. 예컨대 보험회사와 제약사 등은 3월 결산법인이 많은데, 이들 기업은 1분기가 4월부터 6월까지여서 이번 어닝시즌에는 기존 K-GAAP 실적을 발표해도 상관이 없다. 많지는 않으나 6월결산법인, 9월결산법인은 IFRS 적용시기가 더 늦춰진다.

이밖에 분기 실적에 어떤 회계 기준을 적용했는 지 아예 밝히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25일 실적을 공개한 SBS, 26일 공개한 유비벨록스 등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번 어닝시즌에는 기존의 K-GAAP과 연결 IFRS, 별도 IFRS 등이 뒤죽박죽으로 혼재돼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마다 일일이 어떤 회계기준을 적용했는지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장석인 금융감독원 IFRS팀장은 "공정공시를 통해 가결산 실적이 발표되긴 하지만 분기보고서를 활용해 보다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