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최근 주가 상승 덕에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으로 대박을 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받은 스톡옵션과 스톡그랜트(성과연동주식)의 평가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편입 기업들이 2008년 10월1일부터 이듬해 9월30일 사이에 자사 CEO에게 지급한 스톡옵션이나 스톡그랜트의 현재 평가액이 지급 당시보다 총 30억달러 이상 늘었다고 28일 보도했다. S&P500 지수 편입 기업 CEO 중 90% 이상이 해당 기간에 스톡옵션이나 스톡그랜트를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는 2008년 9월 발생했다.

WSJ는 금융위기 직후 스톡옵션이나 스톡그랜트를 지급했던 회사들은 당시 주가가 급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옵션 행사가격도 낮게 책정했고 지급한 옵션이나 주식 물량도 평소보다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 실적이 호전되면서 주가가 상승함에 따라 옵션을 행사할 경우 발생하는 차익이 급격히 커진 것이다.

앨런 멀럴리 포드 CEO는 2009년 3월11일과 30일에 1600만달러 상당의 스톡그랜트 등을 받았다. 당시 포드 주가는 2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후 포드는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와 달리 파산보호 신청을 모면하면서 미국의 이른바 '자동차 빅3'중 가장 빠르게 회생했다. 올 1분기 순이익이 13년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주가도 멀럴리 CEO에게 스톡그랜트를 지급한 이후 2년여 만에 8배 급등했다. 이에 따라 멀럴리 CEO가 스톡그랜트를 지금 행사해 주식을 매각한다면 그 가치는 2억달러에 이른다고 WSJ는 추산했다.

대형 의류 유통업체인 아베크롬비피치의 마이클 제프리스 CEO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9월 사이에 네 번에 걸쳐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지급 당시 평가액은 4600만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평가액은 1억9600만달러여서 제프리스 CEO가 당장 옵션을 행사하면 1억5000만달러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

에너지 개발회사인 나보스인더스트리의 유진 아이젠버그 CEO도 금융위기 이후 3700만달러어치 스톡옵션과 스톡그랜트를 받았는데 현재 이들의 평가액은 1억3300만달러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커피체인점인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CEO도 27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당시 평가액은 1240만달러였지만 현재는 7600만달러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클라우드컴퓨팅 세계 1위 업체인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2008년 11월 775만달러 상당의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현재 이 스톡옵션의 가치는 6700만달러로 5900만달러 이상 늘었다.

이 밖에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CEO도 스톡옵션 평차 차익이 3550만달러 정도이며 스타우드호텔의 프리츠 반 파센 회장은 576만달러였던 스톡옵션 등의 가치가 5700만달러로 10배 정도 증가했다고 WSJ는 분석했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본 CEO도 있다. 농업기업 몬산토의 휴 그랜트 CEO는 2008년 10월 받았던 960만달러 상당의 주식과 옵션이 주가 하락으로 인해 옵션을 행사할 수 없거나 가치가 폭락한 상태다.

케빈 머피 서던캘리포니아대 마셜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 직후 낮은 가격으로 받은 대규모 스톡그랜트가 한순간에 대박을 치는 복권이 됐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