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전날 일부 예금주들이 찾아간 돈을 민사소송으로 환수하겠다는 금융당국의 계획은 대법원 판례와 법리상 성공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28일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등은 "법을 고쳐서라도 환수하겠다"고 하지만 감독당국의 의지가 얼마나 통할지 미지수다.

◆법리,판례로는 '특혜인출' 환수 어렵다

금융감독원은 예금보험공사를 원고로,예금 인출자들을 피고로 해 민법 제406조(채권자취소권)를 적용한 민사소송(사해행위취소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관련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권자의 채무 변제 요구는 당연한 권리이고,채무자가 일부 채권자에게만 변제를 했다 해도 법에 어긋나는 행동(사해행위)이 아니다.

저축은행이 대주주와 고위 임직원,그들의 친인척과 VIP 고객에게만 예금을 인출(변제)해줬다 해도 사해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는 전원합의체로 인한 변경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급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치므로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민사소송의 결과에도 반영될 확률이 높다.

대신 예외는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무자(저축은행)가 일부 채권자(예금 인출자)들과 '통모'(남몰래 서로 통하여 공모함)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 '사해행위'에 해당된다. 저축은행과 일부 예금 인출자들이 예금을 찾아가지 못한 다른 예금주들에게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짜고' 돈을 찾아갔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하면 승소 확률이 높아지는 것.

하지만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피해자가 저축은행의 '모럴 해저드' 실태,즉 통모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금감원과 검찰이 나선다 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절차다.

요건 또한 까다롭다. △변제 액수 △저축은행과 예금 인출자의 관계 △저축은행의 재정상태에 대한 인출자들의 의식 △당시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서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한 판사는 "사해행위취소 소송에서 '예외'를 인정받기란 상당히 어렵다"면서 "이번 저축은행 특혜인출 사태처럼 은행과 일부 예금주들이 '현금 거래'를 했을 경우에는 이들이 악의를 가지고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정을 피해자들이 입증하기는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환수에 총력 다하는 금감원 · 검찰

반면 금감원 측은 "민사소송으로 환수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부당인출이 입증되면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부산저축은행에서 부당한 특혜인출을 가려내는 검사를 진행하며 사례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부당인출 예금은) 최대한 환수할 수 있도록 대형 법무법인에 법률검토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김홍일)는 사흘째 금감원 및 금융위원회 실무자와 인출에 관여한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은행 직원들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은행의 CCTV 등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특혜인출 현장에서 금융당국의 방조가 있었는지 여부도 살피고 있다. 검찰은 금융당국 관계자들에게는 직무유기 및 공무상 기밀누설죄를,직원들에게는 사문서 위조 혐의 등을 적용해 형사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한편 조만간 예금 인출자들도 조사할 예정이다.

한 변호사는 "평범한 피해자들이 이기기 어려운 소송"이라며 "여론이 악화되자 금감원이 '청와대 눈치보기'용으로 급히 꺼낸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이고운/류시훈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