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 당료나 의원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석에서 선거에서 반드시 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전망한 뒤끝이었다. 한나라당의 진정한 문제는 그것을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광란의 도가니였던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MBC 사장을 했던 엄기영 씨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그럴 바에야 한나라당을 찍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른 후보들도 옛 민정당의 부활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공천 실패의 문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무엇을 하자는 정당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부와 여당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을 따라하려는 듯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데 열중해왔다. 그동안 선거가 치러지고 패배할 때마다 그랬다. 선거에 질 때마다 포퓰리즘이며 사회적 뇌물 정책을 쏟아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서민 빚을 늘리는 대출제도, 전세가 상한제, 이자 상한제도 모자라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통제 등 과거 좌파 정책을 모방한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러니 기왕에 포퓰리즘을 하려면 원조당인 민주당이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건강한 우파 보수층은 점차 한나라당과 정체성을 같이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중간투표자 정리에 기반한 정치 공학이라고 하지만 그런 정책을 펼수록 반대당의 영역은 오히려 확장되었다. 포퓰리즘이 공인되는 효과가 더욱 컸기 때문이다. 좌파그룹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이념의 영역을 확장시켜 준 개념없는 이 정부 때문이다. 권력 내부에서는 특정 인맥이 인사를 농단하고 있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다. 민심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어제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다음달 초에는 부분 개각과 청와대 개편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념과 철학을 재정비하지 않는 한 당정 개편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나라당을 찍어야 할 하등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선거가 계속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