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은 중간에 자본력을 무기로 진입한 대기업도 아니고 30년 가까이 시장을 키워온 중견기업입니다. 지금 논의되는 안대로라면 회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키우지 말라는 소리죠."

충북 음성군 대소면 대풍리에 있는 '풀무원식품 음성두부공장'에서 28일 만난 임종길 공장장은 동반성장위원회가 두부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충격 그 자체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칫 두부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을 맞은 탓이다. 두부는 이 회사 매출의 35%를 차지하는 핵심제품이다.

◆"풀무원도 27년 전 중소기업이었건만"

풀무원 "30년 공들여온 두부사업 손 떼라니…"
풀무원이 설립된 1984년 두부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입이 금지됐었다. 당시 두부는 시장에서 영세업체에 의해 생산,유통됐고 이따금씩 '석회 두부' '화학응고제 두부' 같은 먹을거리 파동이 터졌다. 직원 10명에 자본금 3000만원으로 출발한 풀무원은 '포장두부'를 선보이며 성장가도에 올랐고,한때 두부시장 점유율이 80%를 넘기도 했다.

2006년 고유업종 제도가 폐지돼 CJ제일제당 대상 등이 두부를 내놨지만,풀무원은 지금도 50%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한 1위 업체다. 하루 두부 생산량은 25만모.풀무원은 미국과 중국에 해외 두부공장 4곳을 가동 중이며,베트남 등 동남아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임 공장장은 "국내 사업에서 손을 떼면 해외 사업에만 주력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국내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해외 공장에서 바로 생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R&D에 100억원씩 투자하는데"

생산라인을 총괄하는 장용길 생산파트장은 풀무원이 급성장하던 1994년 입사한 뒤 경기 양주,경남 의령을 거쳐 음성에 오기까지 두부공장에서만 일했다. 장 파트장은 "풀무원도 초창기엔 수많은 중소업체 중 하나였다"며 "시장에서 타 업체와 동등한 입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자력으로 여기까지 성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입사한 1994년에 두부 유통기한은 3일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7일이 됐고,지금은 15일입니다. 곧 28일까지 늘리는 기술이 완성될 겁니다. 화학 처리를 전혀 하지 않고 미생물을 컨트롤하는 기술을 이만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겁니다. "

풀무원은 지난해 연구 · 개발(R&D)에 102억원을 투자했으며,두부 전문가 10여명을 포함한 100여명의 석 · 박사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의욕을 갖고 투자해왔는데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 사업을 이양하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며 "우리 회사의 모태사업인 두부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30대 직원 "혹시 내 일자리는"

장 파트장은 "우리 공장 직원은 대부분 인근에 거주하는 20~30대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본격적으로 뛰는 사람들"이라며 "두부사업을 접게 한다면 이들의 동요가 엄청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의 우려대로 일선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고용 불안'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8년 전 첫 직장으로 음성공장에 입사한 이정윤 씨(38)는 "직원 입장에선 승진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 아니겠느냐"며 "이 공장이 더 성장하지 못한다면 난 승진도 할 수 없고 사회적 이동 기회도 박탈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풀무원 측은 이날 동반성장위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대한 건의서'를 제출했다. 회사 관계자는 "동반성장위 공청회(지난 22일)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논의된다는 사실조차 몰라 공청회 때는 아무 발언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건의서는 "저희 같은 기업들의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반영해 모두가 공감하는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핵심 사업의 존폐 기로에서 속앓이를 하면서도,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한껏 몸을 사려야 하는 처지다.

음성=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