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세기의 로열웨딩] 20억명 시청, 100만명 런던行…30년 만에 즐기는 '글로벌 파티'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 윌리엄 왕자와 '평민' 케이트 미들턴이 29일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런던에는 100만명의 관람 인파가 몰렸고 세계 각국에서는 2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TV를 통해 왕실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을 시청한 7억명의 3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첨단과학과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21세기 사회와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왕실결혼(로열웨딩)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로열웨딩의 코드

영국에서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간 세기의 결혼 이후 30년 만에 열린 로열웨딩은 벌써부터 영국 사회의 전환점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우선 사상 최대 재정적자 위기를 겪고 있는 영국은 세기의 결혼을 경기 회복의 계기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정치적으론 왕실을 중심으로 한 사회통합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날 결혼식에선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의식과 의례들이 치밀하게 진행됐다.

결혼식이 열린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1066년 잉글랜드왕 해럴드가 대관식을 가진 이래 1000년 가까이 38명의 영국왕이 대관식을 가졌던 곳.제프리 초서와 찰스 디킨스 등 영국을 대표하는 문인과 아이작 뉴턴,찰스 다윈의 무덤이 있는 영국 전통의 상징 같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1100년 헨리1세와 1382년 리처드2세의 결혼 등 총 14건의 로열웨딩이 거행됐다. 1919년부터는 영국 왕실의 크고 작은 결혼식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이처럼 영국 왕실의 1000년 전통을 상징하는 곳에서 윌리엄 왕자는 군복을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에드워드 엘가,벤저민 브리튼 등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과 영국 민요 '푸른옷소매'가 축가로 연주됐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 결속을 강화한다는 의미를 담은 웨일스산 금반지가 결혼 예물로 신부에게 주어졌다. 왕자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붉은색 군복을 입어 지역 화합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식을 마치고 신부는 전통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구의 무명용사 묘비에 부케를 바쳤다.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윌리엄 왕자 부부가 키스를 할 때 하늘에선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하늘을 지켰던 전투기들이 축하비행을 했다.

영국의 국가 정체성과 왕실 중심의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세밀하게 계획된 의례들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 '시대착오적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왕실이 결혼식을 계기로 영국 사회의 중심이라는 점을 과시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00년 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조지5세 대관식엔 유럽 각지의 국왕과 왕족이 참가해 사라져 가는 왕조제도의 마지막 전시장 역할을 했다"며 "반면 윌리엄 왕자의 결혼은 영국 왕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중심이라는 점을 과시한 자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도 "윈스턴 처칠은 엘리자베스2세 대관식이 TV에 생중계되는 것이 왕실의 위엄과 신비로움을 박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며 "하지만 오늘날 영국왕실은 결혼식 행사를 생중계하면서 오히려 왕실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판 '포틀래치'의 명암은

전근대적인 왕실 호화 결혼의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요 경제전문가들은 로열웨딩의 경제효과가 11억파운드(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버딕트는 "로열웨딩은 6억2000만파운드(1조1000억원)의 경기부양 효과가 있고 2012년 런던올림픽 홍보효과 등 간접효과까지 고려하면 11억파운드의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 60만명의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관광업계와 주류 · 외식업계가 반색하고 있다. 영국 PwC는 "런던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결혼식 당일 지출 규모만 1억700만파운드(1912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런던지역 쇼핑도 활성화되고 펍과 나이트클럽,영화관 등도 짭짤한 특수를 맛보고 있다.

일각에선 로열웨딩이 자기 과시를 위해 부족 지도자가 온갖 값진 물건을 아낌없이 내주며 사회의 소비와 생산을 자극했던 '포틀래치' 현상의 현대적 형태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 영국에선 600만명이 부활절 휴가와 로열웨딩 사이에 휴가를 내 사치재 구입이나 유흥비 지출을 늘린 것으로 추산됐다. 크리스티나 로터리우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애널리스트는 "로열웨딩으로 2억4000만유로 규모의 여행소비와 2억3400만유로 규모의 기념품 판매,3억6500만유로 규모의 음식소비가 이뤄진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일각에선 로열웨딩이 생산성 저하를 가져왔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LA타임스는 "상당수 영국인이 2주간의 휴가에 들어가면서 생산성 저하가 불가피했다"며 "생산성 감소효과가 100억달러(1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립 쇼 인베스테크 애널리스트도 "로열 웨딩 때문에 3분기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0.25%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