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시구는 미국 야구의 전통 본격적으로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서 시구(始球)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시구자는 누구일까? 1982년 3월 27일 한국 최초의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였다. 시구는 미국 야구의 오랜 전통였지만 국가 원수에 의한 시구는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최초의 국가원수 시구는 1908년 일본 수상였던 오쿠마 시게노부에 의해 고시엔 구장에서 진행되었다. 미국은 이보다 2년 후인 1910년에 워싱턴 그리피스 구장에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에 의해 시구가 시작되었다. 미국 야구의 전통적 의식였던 시구는 지금처럼 피칭 마운드에서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당일 초대된 시구자는 앉아있던 관중석에서 홈팀의 투수나 포수에게 공을 던지는 것이 원래 시구의 모습였다. 미국의 대통령 시구는 지미 카터 전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의 전통이 되었다. 1916년에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69년에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관중석에서 시구를 했다. 1988년 시카고 컵스 게임에서는 어려운 시기에 특유의 리더십으로 소련 붕괴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2001년 월드 시리즈 3차전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이끈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각각 투수 마운드에서 시구했다.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대통령 시구로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상한 2루심``과 함께 한 시구를 꼽을 수 있다. 이 ``수상한 2루심``은 허리에 찬 볼주머니 안에 경호장비를 넣고 있던 비밀 경호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 동원 시구자는 MB 세월이 흐르면서 시구 초대자는 정치인보다는 연예인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 시구자는 1989년 4월 8일 잠실구장에 초대받은 영화배우 강수연였다. 이날 시구를 바라본 관중수는 17,374명였다. 연예인 시구열풍에 불을 당긴 ``홍드로`` 홍수아는 2005년 4월 2일에 관객수 17,513명을 기록했다. 걸그룹 출신 최초 시구자는 2007년 4월 7일 잠실 개막전에 나선 천상지희의 스테파니로 관객수 26,642명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 동원 시구자는 누구였을까? 최다 관중 동원 개막전 시구자는 30,500명을 기록한 2003년 4월 5일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였다. 이 기록에 대해 공정성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즉, 당시에는 입석 입장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견을 제기할 수 없다. 당시 잠실구장 입석 만석은 30,500명으로 3만명 이상 입장한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이는 많지 않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 2,000년에 개그맨 이휘재, 2001년에 두 다리가 없는 미국 입양아 애덤킹(한국명 오인호), 2002년에 전 OB 베어스 투수 박철순, 그리고 2003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등 5명 뿐이다. 그런데 이들 5명중 유일하게 3만명 이상 관중 동원 개막전 시구를 한 번 더 한 이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3년 개막전에 이어 2004년에도 시구를 했기 때문이다. ▲ 엇갈리는 시구의 마케팅 효과 시구가 갖는 마케팅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각 구단 홍보팀의 입장은 구단이 실시하는 수십가지 마케팅 기법 중 하나일뿐, 관중 동원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마케팅 수단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넥센 히어로즈의 경우 신생팀이라서 관중동원과 기업 홍보효과 등에 더 민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재엽 홍보실 과장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밖으로 보여지는 현상이 크게 보일 뿐"이라며 "실제로 스폰서 기업이 연예인 시구가 관중 동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넥센 히어로즈 김기영 홍보팀장은 "모기업이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까다롭게 연예인 시구자를 고르는 이유는 관중동원 때문이라기보다, 이슈를 만들어 다양한 매체 등에 한번이라도 더 비춰지기 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협회, 스폰서, 구단 등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연예인 시구가 볼꺼리 제공과 이벤트 이슈화 등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관중동원 또는 장기적인 팬 확보 측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있다고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다. 반면 광고 대행사의 시각은 약간 다른 것 같다. 제일기획 김주호 마스터겸 BTL캠패인 팀장은 시구 자체가 관중동원에 직접적 효과가 없더라도 간접적 유인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김 팀장은 올초 [The PR]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런 견해를 밝히고 있다. "각종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된다. 팬들은 경기장에 경기를 보러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구단 입장에선 관중을 많이 모으기 위해 다양한 프로모션 및 홍보활동을 전개한다." "야구장의 경우 치어리더를 활용한 응원전은 기본으로, 여기에 가수 공연을 펼치기도 하고 포토타임 등 선수와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시구(始球)는 그런 경기외적 이벤트의 일환이다." "구단이나 경기 주최 측에서 보면, 언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시구자를 미리 고지함으로써 팬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관중 증대효과가 적더라도 시구자로 인해 관중들이 즐거워한다면 다음 경기에 다시 경기장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 권위주의 시구에서 개념 시구, 시민 시구로 프로야구 역사 30년을 맞이하는 올해 프로야구 개막전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시구자로 나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가 지난 2일 문학구장 마운드에 오른 만학도 부부 한철원(57)·문현숙(53) 씨다. 지난 2월 남인천중과 남인천고를 각각 졸업한 이들 부부는 남편이 시구를, 아내가 시타를 했다. 이들 부부를 시구자로 초대한 SK 와이번스는 ‘에듀 스포테인먼트’를 통해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개막전부터 보여주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의 대통령 시구가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미국다운 전통의 한 형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한국에 대통령 시구가 자리잡는 과정은 정권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면서 그 본래 의미가 빛바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홍드로`` 홍수아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땀이 녹은듯한 시구를 기점으로 연예인 시구가 자리잡았고, 연예인 시구가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적 성격으로 변질되면서 점차 의미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추세다. 이런 시구의 성격 변화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의식의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구(始球)는 시구(時球)다. 전재홍기자 jhjeo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