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곽승준 위원장의 無知와 오만
대처 총리는 정책을 살라미 소시지를 얇게 썰어 빵에 끼우는 기술에 비유했다. 정책은 그만큼 정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은 과학에 기초한 '예술'이다. 따라서 정책은 명분과 적시성을 가져야 한다. '왜' 그리고 '지금'인가에 대한 논거와 설득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으로 큰 울림을 주어야 한다. 정책은 특수목적을 위한 '편의'의 문제가 아닌 '원칙'의 문제여야 한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의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발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그는 "대기업들이 정부보다 더 관료적이다"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은 스스로 혁신할 능력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의결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 경영진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배구조가 왜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지,지배구조 왜곡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선 뚜렷한 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공정사회론'으로 시작된 대기업 길들이기의 '완결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익공유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및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모두 대기업 압박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일련의 조치나 의도는 공정사회의 '정치적 파생상품'일 수 있다. 그 기저에는 다수를 이루는 중소기업과 소액주주의 이해를 반영하려는 '인기영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의결권 행사는 "명분,적시성과 진정성 그리고 원칙추구" 측면에서 충분한 정책함량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기업관은 자신의 의도에 갇혀 있다. 그는 삼성전자가 경영진의 안이한 판단으로 아이폰 쇼크에 빠졌다고 했다. 삼성에 창의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을 삼성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삼성은 '부품과 세트'의 하드웨어가 강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부족을 메울 수 있었다. 뒤늦은 추격이지만 애플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대항마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삼성에 대한 애플의 특허권과 상표권 소송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리스크는 지배구조가 아닌 '기업가정신'에 대한 정치권의 '몰이해'이다.

그는 포스코는 방만한 사업 확장으로 주주 가치가 침해되고 있다고 했다.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데 이어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해외 제철소 설립과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외국에 배당금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보다 적절한 투자처를 찾아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은 타당한 의사결정이다. 포스코의 리스크는 지배주주 부재를 틈탄 '정치권의 포스코 흔들기'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이다. 연금을 부담한 것은 근로자와 기업이다. 정부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위탁 관리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민 돈'으로 쥐락펴락,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리인 문제를 최소화하는 길은 대리인의 재량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재무적 투자자로서 수익성과 안전성을 담보하는 게 관리자의 최소한의 의무이긴 하지만 분명한 '선한 의무'인 것이다.

국민연금과 해외 연기금의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 이는 다른 것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자주 거론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금 '캘퍼스'나 사학연금 '티아 크레프'는 특정 직종을 위한 펀드로 국민의 노후자금인 '공적 국민연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국민연금 격인 사회보장연금은 주식투자는 고사하고 비시장성 국채만 구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 혁신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은 혁신에 대한 이해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혁신은 경쟁의 산물이며 지배구조에는 모범정답이 없다. 정부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큰 의결권 행사는 오히려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