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도장을 받아 오세요. "

귀금속 유통업체 A대표(여 · 50)는 "얼마 전 모 금융회사에 2000만원을 대출받으러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며 혀를 찼다. 그는 "개인 재산과 회사 부지 등 담보가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금융사는 남편의 신용도를 확인한 뒤에야 2000만원을 대출해줬다고 한다. A대표는 "남성 기업인에게 아내의 보증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큰 금액도 아닌데 여성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여성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성 기업인의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전국여성경제인협회 회원 2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응답자의 3분의 2가량(62.5%)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영에 불리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 기업인들은 그 이유로 남성 중심의 비즈니스 문화(35%)와 공공기관이나 금융회사 등에서 갖는 여성 기업인에 대한 선입견(21%)을 꼽았다. 일부는 주관식 응답을 통해 "정부조달 물품 구매자들도 여성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19%는 '네트워크 형성의 어려움'을 꼽았고,'육아 · 가사와의 병행'이 17%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들은 이에 따라 '여성 경제인 우대 정책이 여전히 필요하다'(87%)고 입을 모았다.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는 '정부의 자금 조달과 금융 지원 및 혜택'(27.5%)을 들었다. 시장 판로 개척과 마케팅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21.5%였고,19.5%는 여성 기업 생산품에 대해 정부조달물품 선정시 우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해 총 41%가 판로 분야의 지원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 기업경영의 상황은 어떤가'는 질문에 '보통'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9.5%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어렵다'(37.5%) '아주 어렵다'(16.5%)가 큰 비중으로 뒤를 이어 전반적으로 여성 기업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좋다'가 5.5%,'아주 좋다'가 1%로 소수에 불과했다.

전수혜 여성경제인협회장은 "여성 기업 환경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애로를 겪는 여성 기업인이 많은 상황"이라며 "금융부문의 혜택을 늘리고 정부조달 시장에서 여성 기업 물품의 일정 비율 의무구매를 법으로 강제하는 등 현실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soram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