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첫 기자회견과 1분기 성장률 발표 이후 월가에서는 향후 증시 흐름과 관련해 중요한 두 가지 논쟁이 일고 있다.

하나는 경기 전망과 관련한 '더블 딥(경기상승 후 재하강)'과 '소프트 패치(경기회복 국면에서의 일시적 어려움)' 간 논쟁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은 1분기 성장률이 낮게 나온 것을 계기로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정국 경기가 '더블 딥'에 빠지면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증시도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빠진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1분기 성장률이 낮게 나온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소프트 패치론'으로 2분기 이후 회복 국면에 재진입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FRB가 최근 하향 조정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3.1~3.3%인데 1분기 성장률이 1.8%인 점을 감안하면 2분기 이후 성장률이 3%를 넘어야 이 같은 전망치 달성이 가능해진다.

미국의 경기논쟁과 맞물려 정책적으로 거세지는 '쌍둥이 독트린 논쟁'도 월가의 화두다. 하나는 재정정책 우선순위를 적자 축소와 경기부양 중 어디에 둘 것인가와 관련한 '로고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간 논쟁이다. 다른 하나는 통화정책 대상에 자산시장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 논쟁이다.

이미 재정적자가 위험 수위에 이른 만큼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적자 축소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것이 '로고프 독트린'이다. 재정적자가 확대되면 신용등급 추락 같은 신뢰 위기에 봉착하고,재정 지출을 통한 부양 대책은 '구축(驅逐)효과'로 인해 의도한 경기회복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게 이 주장의 근거다.

이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요즘처럼 경기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적자 축소에 우선순위를 두면 1930년대 대공황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는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면 누진적인 조세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일수록 재정수입이 증가해 재정적자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크루그먼 독트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통화정책 대상과 관련해선 원칙적으로 증시나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신념이다.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이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0년대 초반 이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실물경제 여건만을 고려한 저금리 정책을 폈다. 한때는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자산시장의 거품을 일으켜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게 한 주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버냉키 의장은 통화정책 대상에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여긴다. 특히 고수익을 목적으로 각종 파생상품과 레버리지 투자로 실물경기와 자산가격이 따로 노는 정도가 심한 여건에서는 자산시장을 반드시 고려해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버냉키 독트린'의 핵심이다.

다행히 재정정책 우선순위 논쟁은 재정적자와 경기부양을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대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강한 신념을 갖고 추진 중인 '페이-고(pay-go)' 원칙과 일본의 간 나오토 정부가 대지진 사태 이후 일본 경제 부활을 목표로 의욕적으로 구상 중인 '간시안(간+케인시안) 정책'이다.

'페이-고' 원칙은 재정지출 총량은 동결하되 지출 내역에 있어 부양효과가 작은 쪽은 삭감(pay)하고,그 삭감분을 부양효과가 높은 쪽으로 밀어(go)주면 경기가 회복되고 재정적자도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는 이 원칙을 적용,재정과 물가안정 속에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통화정책 대상 논쟁과 관련해서는 '그린스펀 독트린'보다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하는 '버냉키 독트린'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오쿤의 법칙(Okun's rule)'으로 본다면 지난해 4분기까지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부동산 시장 등을 감안해 기준금리를 장기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FRB의 방침이다.

이미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지수 부담 속에 앞으로도 주가가 완만하게나마 상승세를 이어가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월가를 중심으로 지속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쌍둥이 독트린' 논쟁과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새로운 정책수단들은 갈수록 재정적자가 확대되고,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침체를 보이는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각국의 동향을 감안해 우리에게 맞는 최적의 정책 조합을 찾아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