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용 '이라이트紙' 소비 급증…웃돈 줘도 못구해
읽기 편하고 가벼워…전주페이퍼에서만 소량생산
알고 보니 신경숙 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 펴냄) 때문이었다. 지난달 초 미국에서 영어 번역본이 나온 뒤 국내에서도 인기가 치솟아 20만부를 새로 인쇄했다. 2008년 출간돼 170만부 이상 팔린 이 소설은 최근 몇 주간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다시 종합 1~2위에 올랐다. 이 책의 본문용 종이가 '이라이트'였고,이 때문에 최근 한 달여간 '이라이트'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에 사용된 종이는 1㎡당 무게가 70g인 '이라이트70'이다. 70g과 80g 등 두 종류뿐인 '이라이트'는 전주페이퍼에서만 생산된다. 외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하이 벌키(High bulky)' 용지와 비슷하다. 매끈한 '미색모조(미모)' 용지에 비해 다소 거친 재생지 느낌을 주지만 글자를 읽기에는 편하다.
부피감이 미색모조의 1.3배 이상이어서 쪽 수가 적어도 책이 도톰해 보이는 반면 무게는 가벼워 휴대하기에도 좋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등 2004년 이후 여러 문학 출판물에 쓰이고 있다.
전주페이퍼의 전신인 한국노스케스코그가 2003년 개발한 '이라이트'는 연간 생산량이 1만~2만t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엄마를 부탁해》처럼 책이 대량으로 제작될 경우 공급이 일시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소설 외의 베스트셀러에는 이런 일이 없다. 작년 5월 출간돼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 팔린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지난해 말 이후 60만부 이상 판매된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사용된 '미색모조95g'과 '미색모조100g'은 여러 제지회사에서 생산해 물량이 풍부하다.
전주페이퍼의 연간 종이생산량 약 100만t 가운데 85만t은 신문용지다. 나머지 15만t은 학습지나 단행본 등에 쓰이는 출판용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료처리 설비 등을 감안하면 '이라이트'는 연간 최대 4만~5만t까지 생산할 수 있지만 미색모조보다 다소 가격이 높은 탓에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고 증설한 재단(裁斷) 설비가 지난 봄 아직 정상가동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제지회사 임원도 "단행본 출판 시장에선 어떤 책이 '히트'하면 독자들이 그 책으로만 쏠리기 때문에 특정 종이에 대한 공급난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비는 베스트셀러 행진에 힘입어 《엄마를 부탁해》를 추가로 인쇄할 계획이다. 정확한 인쇄 부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인쇄 용지를 미리 확보해 놓아 걱정 없다는 게 창비의 설명이다. 그러나 소설 출간을 준비 중인 다른 출판사들은 '이라이트' 품귀 현상이 재연될까 긴장하고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