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고미영 사진 품고 안나푸르나 오른 남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재수 코오롱스포츠 챌린지 대장…'14좌 완등' 이어 남극정복 도전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5분 거리를 남겨놓고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 생각에 울컥 눈물이 나와 걸음을 멈췄습니다. "
해발 8000m 이상인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재수 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대장(50 · 사진)은 "정상을 바라보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 쓰고 있던 고글을 벗고 잠시 감상에 젖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50분(현지시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그는 3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난 그는 피곤한 기색 없이 그을린 얼굴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고 고미영 대장과 함께 2007년부터 14좌 완등에 도전해 온 그는 "무엇보다도 고미영 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고 대장은 2009년 낭가파르밧을 등정한 뒤 하산하다가 추락사했다. 그 충격에 잠시 등산을 쉬었던 김 대장은 고 대장이 못 오른 가셔브롬 1봉,2봉과 안나푸르나 등 3좌에 올라 14좌 등정을 완성한 것.김 대장의 안나푸르나 정복은 2009년 가을과 작년 봄 기상 악화로 실패한 후 세 번째 도전 끝에 성공한 것이다.
김 대장은 "정상에 도달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건 이 기쁨을 같이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었고,특히 고미영 씨는 2년 넘게 같이 등반하면서 김재수를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고 대장과의 각별한 사이를 털어놨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동반자로서 그는 산을 뜻하는 'M' 이니셜이 새겨진 목걸이를 고 대장에게 선물했다. 고 대장이 사망한 뒤 김 대장은 이 목걸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번 안나푸르나 등반 때도 고 대장의 사진과 함께 목걸이를 몸에 지녔다. 그는 "이제 곧 고미영 씨가 잠든 곳을 찾아 약속을 지켰다고 전하겠다"며 "유품인 이 목걸이를 가족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키와 깡마른 체구로 어떻게 14좌 완등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김 대장은 "선천적으로 좋은 체질을 물려받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은 체력이 좋다고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 높은 곳에서도 버틸 수 있는 체질이 80~90%를 차지한다"며 "몇 년 동안 아침에 20㎞,저녁에 20㎞를 뛰면서 히말라야에 맞는 체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묻자 김 대장은 "어렸을 때부터 32년 동안 할 줄 아는 거라곤 등산밖에 없었고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장은 국제적으로는 최단 기간(2년2개월) 14좌 완등 기록을 공식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1993년 14좌 중 하나인 초오유를 등정하면서 네팔 국경으로 내려오겠다는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탓이다. 그는 "당시 사진이나 기록은 다 갖고 있지만 정식 허가를 받아 올가을에 다시 초오유 등정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김 대장은 "올겨울쯤 남극 정복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고 대장과 함께 찍은 등정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했던 김 대장은 올 여름에 파키스탄 티베트 네팔 등의 산 풍경 사진을 모아 화보집을 낼 예정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해발 8000m 이상인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재수 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대장(50 · 사진)은 "정상을 바라보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 쓰고 있던 고글을 벗고 잠시 감상에 젖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26일 오후 1시50분(현지시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그는 3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난 그는 피곤한 기색 없이 그을린 얼굴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고 고미영 대장과 함께 2007년부터 14좌 완등에 도전해 온 그는 "무엇보다도 고미영 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고 대장은 2009년 낭가파르밧을 등정한 뒤 하산하다가 추락사했다. 그 충격에 잠시 등산을 쉬었던 김 대장은 고 대장이 못 오른 가셔브롬 1봉,2봉과 안나푸르나 등 3좌에 올라 14좌 등정을 완성한 것.김 대장의 안나푸르나 정복은 2009년 가을과 작년 봄 기상 악화로 실패한 후 세 번째 도전 끝에 성공한 것이다.
김 대장은 "정상에 도달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건 이 기쁨을 같이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었고,특히 고미영 씨는 2년 넘게 같이 등반하면서 김재수를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고 대장과의 각별한 사이를 털어놨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동반자로서 그는 산을 뜻하는 'M' 이니셜이 새겨진 목걸이를 고 대장에게 선물했다. 고 대장이 사망한 뒤 김 대장은 이 목걸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번 안나푸르나 등반 때도 고 대장의 사진과 함께 목걸이를 몸에 지녔다. 그는 "이제 곧 고미영 씨가 잠든 곳을 찾아 약속을 지켰다고 전하겠다"며 "유품인 이 목걸이를 가족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키와 깡마른 체구로 어떻게 14좌 완등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김 대장은 "선천적으로 좋은 체질을 물려받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은 체력이 좋다고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 높은 곳에서도 버틸 수 있는 체질이 80~90%를 차지한다"며 "몇 년 동안 아침에 20㎞,저녁에 20㎞를 뛰면서 히말라야에 맞는 체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묻자 김 대장은 "어렸을 때부터 32년 동안 할 줄 아는 거라곤 등산밖에 없었고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장은 국제적으로는 최단 기간(2년2개월) 14좌 완등 기록을 공식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1993년 14좌 중 하나인 초오유를 등정하면서 네팔 국경으로 내려오겠다는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한 탓이다. 그는 "당시 사진이나 기록은 다 갖고 있지만 정식 허가를 받아 올가을에 다시 초오유 등정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김 대장은 "올겨울쯤 남극 정복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고 대장과 함께 찍은 등정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했던 김 대장은 올 여름에 파키스탄 티베트 네팔 등의 산 풍경 사진을 모아 화보집을 낼 예정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