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중앙은행(RBA)이 3일 또다시 금리를 동결했다. 올해 1분기에 물가가 5년래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고 있지만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호주는 광산업에 19세기 이후 가장 많은 투자자금이 몰리는 초호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인력과 자금이 광산업에 쏠리고 호주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자동차 섬유 등 제조업과 관광업이 어려움에 빠져드는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먼저 금리를 인상했던 호주가 추가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이유다.


◆인플레 우려 속 금리 동결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호주 중앙은행은 3일 기준금리를 연 4.75%로 유지했다. 지난 1분기 소비자물가가 전 분기 대비 1.6% 올라 최근 5년래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지만 5개월 연속 금리를 동결한 것이다.

호주는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일곱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공격적인 출구전략을 구사했다. 그런 호주가 출구전략을 중단한 것은 물가보다는 제조업의 침체가 더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발표된 호주의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 대비 0.5포인트 상승한 48.4에 머물렀다. 2개월 연속 PMI가 50을 밑돌면서 제조업 경기가 침체 상태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광산 개발을 위한 과도한 외화 유입으로 인해 호주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수출기업들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호주달러는 최근 198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달러 대비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일에는 호주달러당 1.1달러까지 치솟아 최근 2주 사이에만 6% 급등했다. 이로 인해 수출업과 관광업 등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전했다. 폴 브렌넌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1분기 소비자물가지수가 크게 올랐지만 제조업의 부진으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호주 경제가 회복되는 올 하반기에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산업 나홀로 호황

호주에는 최근 서부 광산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원자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농업자원경제국(ABARE)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 자원 시장의 인수 · 합병(M&A) 자금은 1352억달러(144조6000억원),입찰금액은 354억달러에 달했다. 광산개발업체들의 올 회계연도(2010년 7월~2011년 6월) 자본지출 규모도 548억호주달러(약 60조원)로 직전 회계연도 대비 58%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광산 열풍에 힘입어 호주의 고용시장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실업률은 전월에 비해 0.1%포인트 떨어진 4.9%를 기록했다. 호주 연방정부는 "실업률 5.0% 이하면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다음 회계연도(2011년 7월~2012년 6월) 예산을 집행하면 실업률은 4.5%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문제는 광산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들이 오히려 광산업에 인력을 빼앗기면서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웨인 스완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은 "광산 개발 붐으로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고 있다"며 "정부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긴축재정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최근 광산 개발 붐이 정부의 재정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광산업체에 법인세 이외에 연간 이익의 30%를 세금으로 걷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