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들의 책상에 가족사진이 하나쯤 놓여 있는 걸 보게 된다.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만 봐서인지 사진에 담긴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따뜻하다. 필자 역시 아내,그리고 세 아들과 함께 찍은 여러 장의 가족사진을 책상 위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고 있다. 필자는 사회에서는 한 기업의 경영인이자 상사,동료지만 집에서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자식이다. 가정,그리고 가족은 우리의 존재가 시작되는 출발점인 동시에 늘 따뜻하게 품어주는 울타리다. 영국의 저술가 새뮤얼 스마일스는 "가정이 인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오랜 고심 끝에 목표와 전략,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반면 가정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만큼이나 시간을 투자하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한번 기울어진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곱절의 노력이 들어가듯,한번 금이 간 가족간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나무의 푸르름을 유지하는 데 오랜 기간 햇볕과 수분,거름이 필요한 것처럼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성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은행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행복한 수요일,아름다운 금요일(happy wednesday,beautiful friday)'로 정해 모든 직원이 오후 6시30분에 의무적으로 퇴근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을 가진 사람이 일에도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기에 직원들의 일과 삶의 균형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동료는 이날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는가 하면 어떤 직원은 아내와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필자 역시 이 날만큼은 영화 제작자의 꿈을 키우는 막내 아들을 위해 주로 액션배우가 되기도 하고,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한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가족의 사랑과 행복은 더욱 깊어진다.

한국의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날'이나 '어머니의 날'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아도 가정의 달을 지정한 나라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 중 하나인 5월을 가정의 달로 기념하는 것은 그만큼 가족의 소중함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얼마나 자주 퇴근 후에 아내의 손을 잡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며 대화했는가. 최근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야구나 축구를 한 것이 언제인가. 은퇴를 앞두거나 노년을 준비 중인 부모님께서는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실까.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다고 낙심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오늘부터라도 가족과 함께 좀 더 시간을 보내며 답을 찾아보자.필자도 이번 주말 칠순을 맞는 어머니를 뵈러 24시간 동안 영국 부모님 댁에 깜짝 방문할 예정이다. 깜짝 방문이니 필자의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해줄 것을 당부한다.

리차드 힐 < SC제일은행장 Richard.Hill@s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