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나라당이 '천당' 다음이라고 믿어왔다는 분당에서 패한 것은 20~40대 '넥타이 부대'의 투표율이 높아진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표 중산층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오전 7~9시,오후 6~8시의 출퇴근 시간대에 투표소에 몰렸고,투표소 줄이 너무 길어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다 말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YTN 출구조사에 의하면 30대의 72%,40대의 68.6%가 손학규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에는 또한 내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44.8%로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33.6%)을 훨씬 능가했다는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그 중 월 소득 401만~500만원에서 52.0%,501만 원 이상에서 49.5%가 야당후보 지지로 나타났다. 보수정권 지지자가 돼야 할 고소득층이 오히려 이 정권 타도의 주도집단이 됐다는 여론조사다.

한 나라건 정권이건 망하는 과정에는 예외 없이 이런 핵심 지지집단의 이반(離反)이 나타난다. 이번의 여당패배에 대해 많은 보수우파 사람들이 울적한 터에 뺨맞은 듯 "속이 시원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 당은 분열과 무력(無力)의 상징이다.

그간 오직 표를 좇아 보수정당의 옷을 벗고 정신도 버리고 좌로 흘러 그 지지자들에게 끝없이 피로감과 배반감을 안겨 왔다. 내년 대선이 되면 한나라당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청장년 투표자들이 얼마나 폭포처럼 투표소에 쏟아질지 과연 볼 만할 것이다. 그런데 보수 성향 지지자들은 무슨 낙(樂)으로 투표소에 가겠는가.

작년 6 · 2 지방선거 패배 이래 이 정권은 서민 · 중산층의 표심을 잡는다며 나눔,동반성장,정의사회 같은 논의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이 화두들은 원래 좌파집단의 전유물이다. 이것들은 양극화 선동과 계층갈등 조장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되기에 과거 좌파정권이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해 국민의 귀에 주입시킨 것이다. 상생과 나눔의 주문(呪文)이 매일 되풀이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뇌리에는 자신의 현재 위치가 '남의 탓'이라는 의식이 박히게 된다. 중산층,넥타이 부대 역시 불만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가 이런 논의에 빠질수록 보수정권의 입지는 구차해진다. 상생,나눔은 좋은 사회적 가치지만 국가의 편중개입은 그만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 등 보수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시키게 된다. 국민은 경쟁의 규칙을 싫어하고 국가에 기대어 덕을 보려는 이기집단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이 담론이 지배할수록 기존 보수층은 파괴되고 새로운 보수의 싹은 피울 수 없다. 이리 본다면 날이 갈수록 대세가 좌파에게로 옮겨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이 정부의 노력 덕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의,나눔,동반상생,균형 등 고상한 담론이 충만한 나라가 됐다. 시장경제 원칙,경쟁과 성장을 말하는 사람은 이제 '희귀종'처럼 찾기 어려워졌다. 보수우파의 가치가 지리멸렬함에 따라 한나라당은 그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을 지켜보게 됐다. 2012년 만약 한나라당이 패한다면 이는 그들이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결과일 것이다.

2007년 대선 때 민주당은 "나라를 제대로 바꾸려면 10년이 아니라 2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내년에 만약 좌파정권이 다시 선다면 이념적 정체성과 목적의식이 뚜렷한 이들이 지금 정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리 없다.

이 집단은 철저히 사상,문화,교육기관을 장악해 국민에게 좌파적 가치관을 심으려 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근면,성실,책임의 시대가 가고,동반,평등,균형만을 외치는 시대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실로 오늘날의 보수가치 위기는 한국의 지난 60년 국운 상승기가 종말됨을 알리는 신호일지 모르겠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