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테베 시를 떠날 때,크레온이 "성문을 열어라"고 외치면 공간의 검은 벽 한 면이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숨겨져 있던 1000석의 객석이 드러나고,그 사이로 흰 조명이 길을 만든다. 오이디푸스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관객들이 입장했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퇴장한다. 객석이 무대가 되는 순간,남겨진 배우들과 관객들은 다같이 테베 시민이 되어 커튼콜을 맞이한다.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서재형 연출의 '더 코러스:오이디푸스'.음악극이라는 형식과 연출 기법도 화제를 모았지만 독특한 공간 활용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대가 곧 객석이었고,다시 빈 객석 자리가 무대가 된 것.1000석이 넘는 LG아트센터의 객석은 모두 비웠고,무대 양 옆에 'ㄴ'자 형태로 300석의 객석을 둘렀다. 관객들은 텅 빈 객석 사이를 지나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듯 입장해 원형 무대를 만난다. 원형 무대의 천장은 뻥 뚫려 조명과 무대 장치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배우들은 공연 중에 원형 무대를 휘젓고 다니고 때로 객석 근처까지 뛰어내려오면서 관객들을 극 안으로 빨아들인다.

서재형 연출가는 "관객들을 테베 시민으로 만들고 싶었다. 300석이 넘으면 관객과 배우와의 교감이 확 떨어질 것 같았고,이 공연을 찾은 모든 관객이 똑같은 느낌을 갖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측도 "1000석이 넘는 객석을 모두 비우는 게 부담도 되고 고민스러웠지만,연출 의도를 존중하기 위해 감행했다"고 밝혔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경계인시리즈의 첫 번째 연극 '디 오써(The Author · 5월28일까지)'는 아예 무대가 없다. 검은 장막 사이를 비집고 입장하면 눈 앞엔 100석의 객석만 있다. 50석의 의자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관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를 찾아 앉으면 배우 4명 역시 관객처럼 위장하고 슬쩍 들어와 관객들 사이에 앉는다.

'관객을 위한 연극'임을 표방한 이 연극은 편안하게 앉아 무대 위를 감상하던 습관적인 행위를 완전히 깬다. 관객 사이에 자리한 배우들은 불규칙적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조명은 대부분 환하게 켜져 있다. 마주 앉은 관객들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배우들은 옆에 앉은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뒤에 앉은 관객에게는 초콜릿을 권하기도 한다. 마주 앉은 관객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기도 한다.

배우,작가,관객 역을 맡은 4명의 배우들은 우리 시대의 폭력성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관객들에 대한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공연 초반에는 관객들의 시선이 주로 말을 하는 배우들을 향한다면,극 후반부로 갈수록 대부분의 관객은 눈을 감고 이야기를 듣거나 다른 관객들의 표정을 살핀다.

연극을 보고 난 관객들의 반응은 '신선했다'와 '불편했다'로 갈렸다. 영국 작가 팀 크라우치의 작품인 '디 오써'는 영국 초연 당시 몇몇 관객이 극장을 뛰쳐나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