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가난했던 시기는 한국전쟁 직후로 거론됩니다. 그야말로 가진 게 하나 없는 최빈국이었죠.그런 나라가 지금은 경제규모 13위의 거대 경제권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교사가 한국경제의 발전사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와'하는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우리가 짧은 순간에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국민성,저축 등 다양한 답을 내놨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답에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기업가'였다.

수업을 이끈 이창우 서울여상 교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한국의 열악한 상황에서 지금의 산업강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상상하기 힘든 모험심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교재 56페이지를 펴라"고 말했다. 교재엔 조선소를 짓기 위해 거북선이 인쇄된 500원짜리 지폐와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을 들고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을 찾아가 차관을 빌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화를 비롯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등의 성공스토리가 소개됐다.

지난달 29일 서울 봉천동 서울여상 3학년 숙(淑)반에서 진행된 '기업가 정신' 수업 풍경이다. 이 학교는 올해 '기업가 정신' 과목을 도입한 전국 66개 특성화고교 중 한 곳이다. 중소기업청은 특성화고교생들의 비즈니스 마인드 함양을 위해 지난해부터 '기업가 정신' 교과서 개발에 나섰고 경기도 교육청 인정도서로 승인을 받아 교과목으로 편성됐다. 이 교과서는 기업과 경제,기업가 정신의 이해,기업의 인재상과 리더십,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창업의 미래 등 5개 단원으로 구성돼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주일에 1시간 수업이 진행되는데 취업 준비생들은 물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한국경제를 돌아보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 학교가 통상,금융 분야 특화 고교라는 점에서 국제통상,국제금융 등 다른 과목과의 시너지 효과도 얻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날 수업엔 일일 교사를 맡은 황순영 연세대 겸임교수도 참가했다. 그는 "1980년대 삼성그룹에서 일할 당시 회사 사훈 세 가지 중 첫째는 사업보국이었다"며 "기업가 정신은 단순한 수익 추구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고 말했다.

수업을 들은 이희애 학생은 "언론 등에서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비쳐졌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기업의 역할과 순기능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답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