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듯한 아픔도 가족의 사랑과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

동시인(童詩人) 안학수 씨(57 · 사진)가 성장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하늘까지 75센티미터》(아시아 펴냄)를 출간했다. 여섯 살 때 옆집 형의 발길질로 척추 장애를 갖게 된 안씨는 '꼽추 병신'이라는 놀림과 끊임없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자라 금 세공사가 되고 다시 작가의 꿈을 이룬 과정을 소설로 엮었다.

6 · 25 전쟁 후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부모와 누나의 모습 등 가족의 정이 훈훈하다. '하늘까지 75센티미터'는 일반인과 척추 장애인의 신장 차이를 상징하는 동시에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한 하늘과의 거리'를 뜻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섯 살 터울의 누나와 어린 시절 산에 놀러갔는데 그때 산밑으로 굴러 떨어진 게 장애의 원인이라고 모두 생각했죠.사실은 옆집 형의 점심 상에 손을 뻗었다가 발길질을 당한 건데….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고 당시에는 약방에 가도 진단을 잘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누님이 억울하게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머니도 평생 울었죠.그 형은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

수시로 곪아터지는 종기와 움직일 수 없는 몸,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주인공 '수나'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큰 비가 내린 다음날 그를 엎고 "너랑 나랑 둘이 존디루 가까(좋은 데로 갈까)"라며 강물로 뛰어들기도 한다.

안씨는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을 틔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척집에 식모살이를 간 누나,형처럼 든든했던 동생 등 가족의 사랑이 이 작품의 감동 요소다. 실제 안씨의 스승인 소설가 고 이문구 선생과의 만남이나 문학에 빠져든 과정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무 오래된 얘기라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했습니다. 초등학생이 투신자살하는 등 요즘 청소년과 어린이들도 나름의 고통을 갖고 있지요.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잘 이겨낼 수 있다며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

소설가인 아내 서순희 씨(필명 서희) 덕분에 1993년 서른아홉 살에 등단한 안씨는 그동안 《박하사탕 한 봉지》《낙지네 개흙 잔치》《부슬비 내리던 장날》 등의 동시집을 냈다. 충남 보령과 대천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직업훈련소를 거쳐 전파상이나 시계방에서 일할 때에도 선뜻 기술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밤을 새우며 혼자 기술을 연마하곤 했지요. 희망을 갖고 항상 스스로를 단련시켰어요. 장애가 있어 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나 아픈 기억도 장애와 크게 다르지 않지요.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