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시민단체 거친 농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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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용 농림부 장관 내정자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자는 2002년 농업직 기술고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농림부 차관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 해 7월 중국과의 마늘협상 합의 내용을 농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책임을 지고 한덕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물러났다.
그가 이번에 농림부 장관으로 내정된 데에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농어민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도운 것이 인연이 된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2002년 농림부 차관보 시절에 '66년 만에 발생한 구제역'을 초동 진화했고 뒤이은 강력한 방역조치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농업생명공학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했고 농업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한 '바이오그린 21사업을 추진했다.
서 내정자는 1973년 농림수산부 농업직(농림기좌)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농촌진흥청 종자공급소장,농림부 농산원예국장 식량정책국장 차관보,농촌진흥청장 등을 지냈다. 공직을 떠난 뒤에는 충북농업연구원장,한국지역브랜드포럼 회장 등을 역임했고 로컬푸드운동본부 회장으로 활동해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그가 이번에 농림부 장관으로 내정된 데에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농어민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도운 것이 인연이 된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2002년 농림부 차관보 시절에 '66년 만에 발생한 구제역'을 초동 진화했고 뒤이은 강력한 방역조치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농업생명공학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했고 농업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한 '바이오그린 21사업을 추진했다.
서 내정자는 1973년 농림수산부 농업직(농림기좌)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농촌진흥청 종자공급소장,농림부 농산원예국장 식량정책국장 차관보,농촌진흥청장 등을 지냈다. 공직을 떠난 뒤에는 충북농업연구원장,한국지역브랜드포럼 회장 등을 역임했고 로컬푸드운동본부 회장으로 활동해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