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 불편한 할머니가 자식이 보고 싶어 아이디어를 냈다. 안방 요 밑에 만원짜리를 몇 장 넣어두고 손자들이 오면 슬며시 한 장씩 꺼내 줬다. 손자들은 용돈이 궁할 때마다 할머니댁에 가자고 부모를 조르고 그 덕에 할머니는 자식들 얼굴을 보게 됐단다. 며느리가 올 때마다 장롱 속 금붙이를 일부러 꺼내보이곤 하라는 '조언'도 있다. 웬만큼 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해야 최소한의 대접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단순히 우스개만은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2500여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가족실태'를 보면 부모를 가족으로 본다는 응답이 2005년 92.8%에서 지난해 77.6%로 줄었다. '배우자의 부모는 가족'이라는 대답은 79.2%에서 50.5%로 급감했다. 포털사이트 '씽굿'과 '스카우트'가 가정의 달을 맞아 20~30대 대학생 · 직장인 1057명을 대상으로 '부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42.7%가 '자기희생'을 꼽았으며 '사회와 가족의 기둥'이란 응답은 11.3%에 불과했다. 부모의 희생 덕에 성장했지만 권위와 능력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은연 중 작용한다는 얘기다.

외국도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싱가포르는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무관심을 보다 못해 부모부양법을 만들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법원에 비용을 요구할 수 있게 하고,불응할 경우 벌금을 물리거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미국도 30여개 주에서 부모를 부양하는 자녀에게 세금을 공제해주거나 부양 수당을 지급한다.

그토록 자식에게 박대를 당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게 부모 마음이다. 자식 없이 부부 나름의 인생을 추구하는 '통크(Tonk · Two only,no kids)족'을 바라는 이들이 늘어난다지만 그건 생각뿐인 것 같다. 경매 넘어가는 집의 상당수가 자식 빚보증 서느라 잡힌 경우이고,자식에게 기대지 않겠다면서도 노후준비를 못한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불교경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목숨 있는 동안 자식의 몸을 대신하길 원하고,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길 원한다'고 했다. 우리 주위엔 늙고 병들어 허허롭게 방치되는 부모가 생각보다 많다. 효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 사랑의 한 자락만큼이라도 돌려드릴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