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시장에 신비할 것은 없다. 옥수수는 옥수수이고 납은 납이다. 금 역시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또 하나의 물건일 뿐이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것을 주시하고 여기에 돈을 걸어보려는 투자자라면 몇 배가 넘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

귀금속 원유 곡물 등 상품 투자가 주목받고 있다. 국제 정세와 경기,기후변화 등에 따라 상품 가격의 변동성이 커진 3~4년 전부터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한정돼 있어 매력적이기도 하다. 상품 투자 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6년 전 상품시장에 대해 "새로운 강세장이 시작됐다"고 말했고 지난 2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농부들이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닐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금융시장이 발달하면서 상품 거래가 편리해지고 투자 수단이 확대된다는 것도 투자를 촉진했다. 상장지수펀드(ETF)는 원자재 지수 또는 원자재를 운용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파생상품으로,ETF를 통하면 투자자들이 실물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투자주체도 개인과 정부에서 복잡한 파생상품을 다루는 헤지펀드 등으로 다양해졌다.

상품 투자는 최근 각광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고대부터 이어져왔다. 때론 이것이 한 부호 또는 사회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선망…집값 된 꽃값

중국의 전성시대 중 하나로 꼽히는 당나라 시절.화려함을 좋아하는 장안의 귀족들은 모란을 사들였다. 빨간색과 자주색 모란은 부의 상징이었다. 모란이 피는 시기는 3월 중순.이 시기 열리는 모란 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모란은 집 한 채 가격을 훌쩍 뛰어넘었다. 시인 백거이는 그의 시 '진중(秦中)에서 읊다'에서 "한 포기 꽃이 중농 열 집의 세금"이라고 표현했다. 농부들도 곡식을 사는 대신 모란에 투자했다. 시인 노륜은 "(모란은) 부잣집 자제를 미치게 하며 (모란으로) 장안의 10만가구가 파산했다"고 말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선 튤립 투기가 발생했다. 황실을 상징하는 붉은 줄이 있는 변이종은 더 인기였다. 현재 갖고 있는 구근이 변이종인지 꽃이 피기 전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새 구근이 생기는 데 6~7년이 걸린다는 점 등은 투기성을 극대화시켰다. 1624년 황제 튤립(최고품)은 암스테르담 시내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1200길더였다. 구근이 생기기도 전에 어음으로 거래하는 선물시장이 생기면서 1630년대 중반엔 6000길더까지 뛰었다. 노동자 20년치 수입이다. 그러나 1637년 2월부터 튤립값이 곤두박질치면서 빚을 내며 달려들었던 서민들은 거리에 나앉게 됐다.

◆금과 은,반짝이는 것의 유혹

미국에서 주식 투기꾼 제이 굴드는 1868년 금 시세 조종에 나섰다. 당시 연방정부의 달러 회수 정책으로 1864년 온스당 300달러이던 금은 1869년 초 130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는 짐 피스크와 금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에게 경기 회복을 위해선 정부가 금을 풀어야 한다고 로비했다. 1869년 9월20일 온스당 138달러로 시작한 금은 피스크가 5만달러어치를 사들이자 145달러까지 올랐다. 굴드는 비밀리에 금을 매각했다. 24일 금요일 매수 주문 가격이 160달러로 올랐을 때 정부가 시중 유통량의 25~30%에 해당하는 400만달러어치 금을 매도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금값은 13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굴드와 피스크는 무사했다. 굴드는 금을 팔아 치웠고 피크스는 모든 계약서류를 몰래 파기시켜서다. 반면 수많은 브로커들은 피해를 입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은에 당한 적이 있다. 1998년 벅셔해서웨이는 대규모 은 투자에 나섰다. 당시 은값은 '버핏 효과'로 수개월 만에 90% 상승하며 10년래 최고점인 온스당 7.9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은값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40% 폭락했다. 그해 벅셔해서웨이는 S&P500 지수 대비 연간 수익률이 최악의 성적을 냈다.

◆산업재,투기재로 변하다

일본 스미모토상사의 트레이더 하마나카 야스오는 1994년 회사에는 비밀로 한 채 구리를 매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의 1년 구리 소비량과 맞먹는 250t의 구리를 사들였다. 이에 따라 구리 가격은 그해 말 t당 1800달러에서 1995년 여름 3200달러로 올랐다. 야스오가 이끄는 팀이 전 세계 구리의 5%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는 '미스터 5%'로도 불렸다. 1996년 5월 미국 인디애나미시간파워가 구리를 매도하는 데도 야스오는 구리를 계속 사들였다. 시세 조종이 끝나자 구리값은 5월 t당 2600달러대에서 7월 2300달러대로 떨어졌다. 다음해엔 2000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그는 회사에 26억달러의 손실을 끼쳤고 7년형을 선고받았다. 산업원인 원자재가 투기재로 변질된 것이다.

◆사치품도 사재기

'대항해 시대'인 16세기 유럽에서 후추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후추 같은 향신료는 아시아에서 소량만 수입돼 매우 비쌌다. 신분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었다. 후추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투기 수요가 겹쳤고 가격이 급등했다. 후추 한 상자의 가격은 170두카트였다. 두카트는 24K 금 3.49g으로,국내 금 3.75g(1돈) 가격이 23만5000원(6일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후추 한 상자 가격은 현재 물가로 3718만원이었다는 뜻이다. 또 170두카트는 여자 노예 3명(50두카트×3)을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17세기 말이 돼서야 공급량이 급격히 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중국에서 3년여 전부터 시작된 옥 투기 열풍은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악마를 물리치는 귀중품으로 여겨진 옥은 최근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장신구 수요 및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호탄 인근에서 생산되는 최상급 옥값은 작년 하반기 기준 온스당 3000달러로 10년 전보다 10배가량 뛰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