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시장의 거품 붕괴가 시작된 것인가. 지난 주말 원유와 금 · 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세계 금융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유가는 유종에 따라 하루에만 무려 8~12%나 폭락해 WTI(서부텍사스원유)는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끝도 없이 오를 것만 같았던 금값 역시 온스당 1500달러 밑으로 내려갔고 3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던 은 값은 1주일 만에 30% 가까이 폭락했다.

원자재 가격 급락은 증시에도 파장을 몰고와 지난 금요일엔 코스피지수가 1.52%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도 약세를 보였다. 언제나 이유는 있다. 이번엔 미국의 실업수당 신청자가 크게 늘어 미국이 더블딥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상품시장에 '팔자' 바람이 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동결로 달러 가치가 올랐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 투기세력이 이익실현에 나선 결과라는 설명도 있다. 물론 이런 해석들도 부분적으로는 혹은 단기적으로는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 상품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근본적으로 넘치는 유동성이 만들어낸 인플레 거품이 꺼져가는 현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 EU 등이 거의 제로 수준으로 금리를 내렸고 양적완화를 통해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덕분에 금융위기는 넘겼지만 갈 데 없는 뭉칫돈이 상품시장으로 몰려들면서 과열 수준까지 가격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과열과 최근의 급락은 수급보다는 다분히 화폐적 현상이라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의 지속적인 수요로 원자재 가격이 장기적으로는 되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금 · 은 등 일부 원자재가 지난 몇 달간 비이성적으로 급등한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각종 투기가 상투에 접근했을 때는 늘 장밋빛 전망이 난무했었다는 점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가깝게는 2008년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자 곧 배럴당 200달러 시대가 온다는 예상이 나왔었고 이는 1980년대 초의 2차 석유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자재 랠리 여파로 국내에도 250여개의 원자재 펀드가 생겼고 올 들어 여기에 유입된 돈만 4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택가 골목에까지 금 · 은을 구입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묻지마'식으로 은괴를 샀다가 열흘 사이에 원금의 4분의 1가량을 날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최근 양적완화조치를 예정대로 6월에 끝내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년 만에 금리를 올린 유럽중앙은행도 조만간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인플레 압력 때문이다. 이렇게 유동성이 회수되면 상품시장의 거품은 필연적으로 끝날 것이다. 넘치는 돈이 만들어낸 인플레 환상에서 벗어나 상품시장의 진면목을 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부는 물론 종합상사나 유관 기업들, 그리고 연기금과 개인들까지도 이런 상품시장의 변화에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정부든 개인이든 공공부문이든 아마추어들의 섣부른 투자는 자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