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미로에 갇힌 '공정사회'
지난주 금융감독원을 찾아가 집단기합을 준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당혹감' '배신감'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자신의 직접 통제영역 내에 있는 공직자들의 만연한 비리와 배임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핵심 국정 아젠다로 추진해 온 '공정사회'가 공직자들에 의해 뿌리째 부정 당하고 있었다는 데 대한 배신감도 커보였다. '국민 전체에 주는 분노보다 내가 분노를 더 느낀다' '분노에 앞서 슬픔을 느낀다' 등의 말에서 그런 심사가 고스란히 읽힌다.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 실천적 인프라'로 제시한 건 지난해 광복절 경축식에서였다. 승자가 독식하지 않는 사회,큰 기업과 작은 기업이 상생하는 사회,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 등 그가 경축사에서 열거한 레토릭은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 '공정 신드롬'을 몰고 왔다.

'MB노믹스'의 '반(反)기업 선회'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청년 일자리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물가마저 치솟기 시작하면서 측근들이 앞장서 찾아낸 '마녀'가 대기업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고,대통령 직속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는 '대기업 관료주의'를 깨부수는 것을 새로운 과업으로 공언했다.

'대기업=승자독식=공정사회의 적(敵)'이라는 3단 논법은 '서민과 약자'를 논할 때 빼놓지 않는 매뉴얼로 동원됐다. 당황한 대기업들은 온갖 '위원회'에 불려 다니며 상생(相生)과 동반성장의 선물보따리를 풀어놓기에 바빠졌고,그런 결과물은 고스란히 '공정 사회'의 치적(治積)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터진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비리에 금감원 간부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고,국민들의 분노가 정부기관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 대통령이 느꼈을 낭패감과 통치권자로서의 위기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등잔 밑 권력기관 간부들의 '제도적 불공정'을 놔둔 채 힘없는 기업인들만 볶아댄 꼴이었다는 자괴감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분노한 민심은 사라질 줄 모르는 법조계의 판 · 검사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전관예우',권력기관 출신들의 공기업과 금융회사 낙하산 인사 등으로 옮겨붙고 있는 중이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공정 사회'를 위해 정작 재구축이 시급한 부문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생존을 건 혁신을 쉬지 않아야 하는 기업인가,존망을 걱정할 필요 없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들인가.

일단 설립되고 나면 '존재 이유'를 위해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게 정부 · 공공기관의 부인할 수 없는 속성이다. 동반성장위원회,미래기획위원회 같은 조직도 예외일 수 없다. 이들 기관에 대기업이 발을 들여놔서는 안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무 자르듯 분류해서 적용하고,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지배구조에 간여하는 일을 맡기겠다는 발상이 위험한 이유다.

글로벌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기업들의 세계에선 단순한 상품 · 서비스의 질(質)을 넘어 기업의 윤리와 지속가능 여부,사회적 책임(CSR)을 자율적 국제규범으로 적용하려는 'ISO 26000' 시리즈까지 논의되고 있다. 시장이 해결할 수 있고,해결을 맡겨야 할 영역에 손대기보다는 국민으로부터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기관의 운영을 바로세우는 게 '공정사회' 실현을 위해 훨씬 더 시급한 과제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