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이후 권력 지형이 바뀌고 있다. 당장 중도 · 소장파,친박의 부상과 이재오 특임장관을 축으로 한 친이계의 위축이 뚜렷하다. 지난 주말 꾸려진 비상대책위도 친이재오계의 퇴조가 두드러졌다. 90여명이던 친이계가 친박계(60여명)와 세가 비슷해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소장파의 입김이 세지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가 방향키를 움켜쥐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목소리 높이는 소장파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4선의 정의화 국회 부의장은 친이계이면서도 계파색이 옅다. 비대위원으로는 원유철 박순자 차명진 신영수 윤진식 의원과 정용화 위원장 등 7명이 친이계,김성조 김학송 김선동 의원 등 3명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당연직인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김성식 의원 등은 중립이다.

수적으론 친이계가 많지만 원유철 · 차명진 의원은 김문수 경기지사와 가깝고 신영수 의원은 정몽준 전 대표계로 분류된다. 윤 의원은 이 대통령 직계다. 이재오 특임장관 직계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장파는 반발하고 있다. 남경필 · 정두언 · 정태근 · 권영진 · 김성식 · 김성태 · 구상찬 의원 등 '새로운 한나라' 소속 의원 8명은 이날 모임을 갖고 비대위의 인선방식에 대해 "물러나면서 등에 칼을 꽂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사퇴를 거부했다. 당권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입다문 친이

이재오 특임장관은 4 · 27 재 · 보선 패배에 이어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밀리면서 향후 행보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이 장관이 침묵모드를 유지하는 이유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이날 "당분간 야당과의 소통 등 특임장관직에 충실하면서 정국 방향을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 장관은 부처님오신날(10일)을 앞두고 지역구인 은평구 내 절을 돌아다니는 등 여의도와는 거리를 둔 채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즐겨하던 트위터에서도 침묵했다. 당분간 특강 등 특임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과의 만남도 당분간은 자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의 당 복귀가 늦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초 전당대회에서 당권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현재의 구도 아래서 당권을 잡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돼서다.

◆힘 실리는 친박

친박계는 일단 웃었다. 원내사령탑이 친박에 가까운 인사다. 친이가 분열된 지금 구도대로라면 향후 당내 주도권은 친박과 중도파가 쥘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계가 쇄신그룹과의 연대를 내년 총선까지 이어갈 수도 있다. 박근혜 역할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첫 시험대는 전당대회다. 전대에서 친박과 중도 · 소장파가 연대한다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최소한 64명으로 파악된 친이계가 반격에 성공할지도 관심사다. 친이계가 다시 패한다면 박근혜 대세론에 힘이 실릴 것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