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어느 여름 장마 끝에 길을 나섰다. 햇빛이 뜨겁게 쏟아지자 3년째 애지중지 기르던 난초 두 분(盆)을 뜰에 내놓은 채 왔다는 생각이 났다. 허둥지둥 거처로 돌아가며 이렇게 뉘우친다. '나는 온몸으로,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난초에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

석가모니는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세상의 인과를 사성제(四聖諦)로 가르쳤다. 고(苦) · 집(集) · 멸(滅) · 도(道)다. 삶의 괴로움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이를 없애야 해탈에 이른다는 설법이다. 세속의 우리는 늘 욕심과 아집에 휘둘리지만 법력 높은 선승들은 생에 대한 집착조차 버렸다. 서옹 스님은 오른발 위에 왼발을,왼손바닥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은 가부좌 상태에서 열반했다. 이른바 좌탈(坐脫)이다.

선 채로 숨을 거두는 입망(立亡)의 기록도 있다. 달마,혜가를 잇는 3대조 선승 승찬은 떠날 때가 됐음을 깨닫고 뜰을 거닐다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입적했다. 당나라 곽산선사는 장작을 쌓은 다음 불을 질러 스스로 화장했고,선자덕성은 "땔나무도 필요없고 땅 팔 일도 없다"면서 강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이치의 궁극적 실천일까.

서암 스님에게 제자들이 열반송을 청했다. "나는 그런 거 없다. "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요. "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서산대사 휴정은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러하다'는 임종게를 남겼다.

불가에선 악업의 사슬이 무겁다 해도 견고한 정진으로 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먹고 살기는 나아졌어도 세상의 혼탁함은 여전하다. 집착에 의한 반목과 질시,거짓이 난무하며 우리 삶을 옥죄인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지 2555년 되는 날이다. 힘겹고 짜증나는 일 많지만 마음 한자락 열어 놓고 집착에서 벗어나려 애써 볼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