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D-6] "국민이 복지에 기대 살면 국가는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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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베르스 前 네덜란드 총리 인터뷰
성장 없는 복지의 함정
복지병 시달리던 80년대 재정적자, GDP 10% 넘어
과감한 개혁과 희생
임금인상 억제·일자리 공유…노·사·정 한 발씩 양보, 감세정책으로 기업엔 활력
국가경쟁력 높이려면
작은 정부·시장기능 강화 등 경제 시스템 혁신 필요…교육 통해 생산성도 높여야
성장 없는 복지의 함정
복지병 시달리던 80년대 재정적자, GDP 10% 넘어
과감한 개혁과 희생
임금인상 억제·일자리 공유…노·사·정 한 발씩 양보, 감세정책으로 기업엔 활력
국가경쟁력 높이려면
작은 정부·시장기능 강화 등 경제 시스템 혁신 필요…교육 통해 생산성도 높여야
"과도한 복지는 투입된 재정 규모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요구합니다. 복지 혜택에 기대어 사는 계층이 일할 동기를 잃게 되고,복지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잉복지병에 시달렸던 1982년 네덜란드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웃돌았던 건 이런 배경에서였습니다. "
1980~1990년대 강력한 리더십으로 복지병에 빠져 허덕이던 네덜란드를 구해낸 루드 루베르스 전 네덜란드 총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과잉 복지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1982년부터 1994년까지 총리를 지내며 '일하지 않는 복지국가' 네덜란드를 과감히 수술대에 올렸던 그는 "복지 과잉의 늪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위해 많은 시간과 함께 사회적 충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는 루베르스 전 총리의 강력한 개혁정책에 힘입어 2000년대 이후 독일,핀란드와 함께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견실한 경제 체질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를 유럽 강소국으로 이끈,이른바 폴더 모델(Folder model · 튤립 모델로도 불린다)은 주변국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루베르스 전 총리는 오는 17일 한국경제신문 주최로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2011'에 기조 연설자로 참석,'과잉 복지국가에서 역동성 넘치는 혁신 사회로'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1980년대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총리에 취임한 1982년 당시의 네덜란드는 과잉 복지국가의 전형이었습니다. 스웨덴에 버금가는 복지 혜택으로 국민들 사이엔 노동 기피현상이 팽배해있었죠.천연가스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산업 현대화 등 장기적인 국가 발전에 투자되는 대신 비대해진 사회보장제도의 부족한 세수(稅收)를 메우는 데 쓰였습니다. 방만한 사회보장제도의 운영과 이로 인한 재정적자는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암적인 요인이 됐습니다. 1980년부터 3년 연속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하면서 실업률이 치솟았죠.정부와 기업,가계 모두가 말할 수 없이 어려웠습니다. "
▼어떻게 '성장없는 복지'의 함정을 극복할 수 있었나요.
"충격이 필요했죠.그래서 3단계 전략을 마련했습니다. 1단계는 재정 개혁이었고,2단계에선 민간 기업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산업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를 추진했고요. 3단계로는 기업의 추가 부담없는 일자리 공유를 통한 실업 해소를 꾀했습니다. 임금 인상 억제 등에 노사가 타협하지 않으면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압박도 병행했습니다. 결국 1982년 말 노사는 임금 인상 자제와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근무시간 단축 등을 골자로 하는 바세나르 대타협을 이뤘습니다. 이 협약을 토대로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기업 과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1983년 공무원 임금,최저임금 및 사회보장 수당을 3.5% 삭감했습니다. '많이 벌수록 세금을 적게 낸다'는 감세 원칙을 정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내는 기업에는 오히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했습니다. 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
▼바세나르 협약이 체결된 지 30여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현재의 네덜란드가 의도한 대로 바뀌었습니까.
"재정 지출을 많이 줄였지만 여전히 높은 사회복지 예산 비중(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의 24%)은 골칫거리입니다. 사회보장 비용 등 공공 부문의 지출을 더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개혁을 통한 높은 생산성과 혁신적인 사회 시스템은 국가 경제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배경입니다. 바세나르 협약으로 네덜란드는 더 이상 물가 상승과 연동한,과도한 임금 인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국민들 역시 더 이상 자신들이 누리는 복지 혜택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선 지금 보편적 복지냐,선택적 복지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복지에 기대 사는 것에 익숙해지면 국가 경제는 헤어나오기 힘든 늪에 빠집니다.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과도해지면 그 혜택을 누리며 사는 미취업 인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죠.이로 인해 취업 인구가 미취업 인구를 부양해야 할 재정적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사회적 불균형은 더욱 심해집니다. 복지 정책이 정치적인 구호로 사용된다면 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얘기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사회 구성원들이,특히 젊은 세대들이 일을 하는 것과 복지 혜택을 받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줘야합니다. "
▼일자리 공유를 위해 추진한 근로시간 감축이 네덜란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근로시간을 최대화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근로시간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국가경쟁력 점수를 매길 수 없습니다. 근로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 당 생산성입니다. 근로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더 많이,얼마나 더 오래 일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
▼최근 한국에선 공정사회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동반성장,사회불균형 해소 등을 위한 정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작은 정부와 시장기능 강화는 네덜란드 사회 · 경제 시스템 개혁과 혁신의 기본 방향이었습니다.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분배와 형평에 대한 정치적 논의에 얽매이지 않고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시장 기능을 지속적으로 확대한 것이죠.우편 · 통신사업,공무원 연금공단을 시작으로 1980년대 말부터 이뤄진 공기업 민영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국가 재정의 총체적 위기상황이 아니고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경우 잃는 것이 더 많다고 봅니다. "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육과 혁신입니다. 과잉 복지로 유럽에서조차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네덜란드가 20여년 만에 강소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타협을 토대로 한 혁신과 교육 덕분이었습니다. 혁신은 익숙해지고 정체된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교육은 젊은 세대들에게 일하고 싶은 의지를 심어주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교육과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해 보여도 국가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퇴보할 수밖에 없죠."
▼한국이 선진국으로 완전하게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현재 시점에서 선진사회 진입을 위한 조건을 '한층 가벼워진 미래(lite to the future)'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탄소 경제 등 미래를 위한 준비 없이는 선진국 진입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저탄소 시대에 대비한 사회 · 경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과 완전히 통합된 경제권 형성 역시 선진국 진입을 위한 선결 조건입니다. "
◆ 루베르스 前 총리는…'네덜란드 기적' 초석, 노·사·정 대타협, 바세나르 협약 주역
루드 루베르스(Ruud Lubbers) 전 네덜란드 총리(77)는 1980년대 초 '과잉 복지'의 늪에 빠져 신음하던 네덜란드를 과감한 개혁을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강소국으로 탈바꿈시킨 정치 지도자다. 1982년 총리에 오르자마자 복지병 수술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강단있는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네덜란드 기적(Dutch miracle)'의 초석이 된 바세나르(Wassenaar) 협약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국가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임금 인상 자제와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골자로 하는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를 풍미한 자유시장경제 수호자이기도 하다. 그가 대처,레이건과 함께 주창한 '큰 시장,작은 정부(more market,less government)'는 시장경제 복원의 슬로건으로 자리잡았다.
고향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루베르스 전 총리는 34세 때인 1973년 경제부 장관에 발탁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1982년 말 43세 때 총리직을 넘겨받아 1994년까지 12년간 재임했다. 네덜란드 역사상 최연소 · 최장수 총리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1995년엔 국가 고문격인 종신형 명예장관(Minister of State)으로 위촉됐고,2006년과 2010년 네덜란드의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임시 과도정부의 수장(informateur)을 맡기도 했다. 2001~2005년엔 유엔난민기구(UNHCR)의 수장인 고등판무관을 지냈다. 네덜란드 틸버그대와 미국 하버드대 등에서 세계화를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
지금은 네덜란드 에너지연구재단(ECN) 회장과 로테르담 기후 이니셔티브(RCI)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세계 30여개국 100여명의 전직 대통령과 유명 기업인,과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는 비영리 · 비정부 미래 연구기관인 로마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이정호/허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