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는 전화나 이메일로 비즈니스를 하지만,워싱턴 비즈니스는 관계 형성을 위한 만남을 주로 하기 때문에 워싱턴의 교통체증이 고층 빌딩이 밀집한 뉴욕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얘기가 있다.

로비업체나 컨설턴트,방위산업체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예외 없이 자기네 인맥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레이건 정부 시절 백악관 비서관을 했고,동료는 국회의원 아무개 보좌관을 했으며,자기 회사 부사장은 군 장성 출신이라는 식이다. 이들 사무실에는 전 · 현직 대통령이나 장관,유명한 국회의원과 찍은 사진을 걸어 놓고 '파워'를 과시한다. 유치하기는 하지만,핵심 역량인 영향력 마케팅 차원에서 이해가 간다.

행정조치와 법안의 제조 공정이 이뤄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는 연관 산업인 로비와 컨설팅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이들은 주로 의회와 백악관이 가까운 K가에 밀집해 로비산업은 'K가 산업',또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상 · 하원에 이어 '제3원'으로도 불린다.

미국 로비스트협회는 로비는 대의민주정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권리임을 주장하면서 수정헌법 제1조 국민의 청원권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보편적으로 로비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지만 유독 미국에서 로비문화가 활발한 것은 지리적,종교적,인종적 차이가 크고 이익집단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 기인한다.

로비공개법에 따라 의회에 정식 등록한 로비스트만 1만5000여명에 달하고,연간 수임료만 30억달러를 훌쩍 넘는 대형 서비스 산업이다. 등록 의무가 없는 컨설턴트,일반 기업의 정부 관계 부서 직원 등을 포함하면 워싱턴에서 로비 활동에 실제 종사하는 사람은 6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워싱턴의 '돈,접근,관계' 비즈니스

돈을 매개로 한 유니크한 상품인 '영향력'을 사고파는 워싱턴의 비즈니스 문화는 'Money,Access,Relation,Connection'(MARC)로 대표된다. 새로운 법안이나 정부 정책에 따라 엄청난 돈이 왔다 갔다 하니,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수많은 돈이 쓰여진다.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는 의회와 백악관에 '접근'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며,힘이 있는 전직 의원과 보좌관,행정부 고위 관료의 순환 '네트워크','커넥션'이 형성된다. 이에 따라 소위 회전문 인사,패섞기 인사,리사이클 인사라는 말도 생겨났다.

실제로 상위 20대 로비업체에서는 통상 50~100명의 전직 고위 관료 출신을 고용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 소유자인 경우 연봉이 100만달러가 넘고,시간당 급여가 300달러를 넘는 로비스트도 있다.

불황을 모르는 로비산업

로비의 폐단을 크게 느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로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취임 하루 만에 로비스트와 의회,정부 간 관계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언론도 때를 맞춰 로비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는 기사를 쏟아냈지만,로비산업은 여전히 위축되지 않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개혁 아젠다를 밀어붙이면 붙일수록,살아남기 위한 로비가 치열해지고 오히려 로비산업이 더욱 번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연방정부의 규모와 기업 활동에 대한 관여도가 커지면서 미국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에 로비의 중요도는 높아지고 있다. 우리 기업에 로비나 컨설팅은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글로벌 역량이 점차 커지고,특히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양국 간 경제협력이 강화되면 비즈니스 기회가 늘어나면서 워싱턴의 로비 회사나 컨설팅 회사를 활용할 기회가 많아질 전망이다.

이들 서비스는 일반 제조상품과 달리 하자 보증이나 반품 등의 보장책이 없으니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지명도가 있는 업체는 신뢰성이 높은 대신 수임 단가가 높다. 난립한 중소형 컨설팅 업체 가운데는 부실 업체도 많으니 선정과 계약에 신중해야 한다. 처음부터 계약 내용을 분명히 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위약 조항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이들과 계약서를 작성할 때 전문 변호사 자문은 필수다. 직설 화법을 중시하는 만큼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본론에 바로 들어가고,싫으면 싫다는 표현을 분명히 하며,원하는 사항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오혁종 KOTRA 워싱턴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