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캣을 잘 샀고 대단히 만족합니다. 조만간 성과를 거둘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2007년 11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당시 부회장)이 미국 건설장비업체 밥캣 인수 계약식에서 한 말이다. 두산의 밥캣 인수금액은 51억달러로,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 합병(M&A)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두산 경영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그룹의 '유망주'로 부상한 밥캣은 인수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대규모 차입금 후유증으로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고,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밥캣이 있었다.

그랬던 밥캣이 살아나고 있다. 해외 건설경기 회복으로 지난 1분기 밥캣의 매출은 696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9.1% 증가했고,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20억원과 320억원의 흑자를 냈다. 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선 것은 28개월 만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그동안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아온 '밥캣 리스크'가 해소되고 있다"며 "밥캣이 두산의 성장동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밥캣 리스크' 벗어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대규모 차입을 불사하고 밥캣 인수에 나선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였다. 이 회사는 매출 가운데 80%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어서다. 사업구조뿐 아니라 직원의 약 60%가 외국인일 정도로 글로벌화돼 있다. 초반에는 의사 소통 및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비효율성도 컸다. 두산이 M&A 이후 통합작업(PMI)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전 세계 직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해 매달 세계 각 지사 직원의 이야기를 담아 한국어 및 영어,중국어로 '원두산 매거진'을 내고 있다.

밥캣 관련 차입금에 대한 우려도 가라앉고 있다. 최근 산업차량(지게차) 사업부문 매각과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지분 20% 처분을 통해 총 625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DICC도 상장을 추진하고 있어 추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예전과 같은 경기 침체가 발생하지 않는 한 향후 밥캣의 흑자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시장 자체는 위축됐지만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높아져 브랜드 파워도 더욱 강해졌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건설기계업계 순위가 5위로 2단계 올라섰다. 경기 침체를 이겨내지 못한 상위 두 개 업체가 사라져서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밥캣의 구조조정에는 직원 3분의 1을 감축하는 고통도 있었다"며 "비용은 줄고 점유율은 높아진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된 덕분에 밥캣의 턴어라운드에 탄력이 붙고 있다"고 말했다.

◆공작기계,사상 최대 호황

밥캣의 실적 개선에 힘입어 두산인프라코어의 건설기계 부문 실적도 크게 좋아졌다. 지난 1분기 건설기계 부문 매출은 1조848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늘었고 영업이익도 50% 이상 증가했다. 밥캣은 지난 3월 2억59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월별 기준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중국 자회사인 DICC의 선전도 두드러진다. DICC는 지난 1분기 중국에서 굴삭기와 휠로더 판매가 직전 분기 대비 각각 70%와 125% 증가하면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밥캣의 실적 회복으로 좀 더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며 "지난해 일본 고마쓰에 내준 중국 굴삭기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연내 탈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기계와 함께 양대축을 이루고 있는 공작기계도 사상 최대 호황을 맞았다. 지난해 하반기 월 1000대 수준이던 신규 수주는 올초 월 평균 1300대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자동차,정보기술(IT) 제품 등 수요 급증으로 상승세를 탄 데 이어 올해는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출 물량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공작기계 생산이 전년 대비 47.1% 증가한 5조원 규모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내수용 주문이 밀려드는 데다 선진국 수출 비중까지 빠르게 늘고 있어 생산 확대가 최대 현안"이라며 "연말까지 생산능력을 월 1400대 수준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제2의 중국' 찾는다

밥캣이 두산인프라코어의 저평가 요인이었다면 중국은 대표적인 '효자 시장'이었다. 1997년 중국에서 굴삭기 234대를 파는 데 그쳤던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2만1758대를 팔아 연간 판매 2만대를 돌파했다. 14년 만에 94배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더 이상 녹록지 않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수익성 확보와 점유율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이 회사가 '제2의 중국'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브라질에서는 올 상반기 2500대 규모의 중대형 굴삭기 공장을 착공한다. 내년 가동을 시작하면 현재 11%인 현지 시장 점유율이 20%까지 높아져 브라질 굴삭기 시장에서 3위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 공략을 가속화하기 위해 대형 딜러 체제 정비 및 현지 영업 인력을 강화하고,현지 법인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현지 생산체제 구축 등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성 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를 통해 안정적인 지역별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밥캣 인수 당시인 2007년 지역별 매출 비중은 한국 · 신흥시장이 47%,중국 21%,미국 · 유럽 시장이 32%씩 이었다. 그러나 올 1분기에는 각각 32%,33%,35% 등으로 균형잡힌 삼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특정지역 경기변동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리스크 분산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과거 밥캣 인수때 의도했던 '균형잡힌 글로벌 포트폴리오 구축'의 목표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