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옷을 벗어,말아?'

변호사법 개정안 공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11일.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비롯한 법조계가 하루종일 술렁였다. 유럽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재와 관보 게재를 거치면 늦어도 내주 초에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변호사법 개정안은 '퇴직 전 1년간 근무했던 곳의 사건을 개업 후 1년간 수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부 부장판사 출신 등 잘나가는 전관의 경우 개업 1년 만에 20억,30억원을 벌 정도로 개업 초기 '약발'이 가장 세기 때문에 개정법안 발효를 앞두고 마지막 고민이 깊어지는 것.'명예냐 돈이냐'를 놓고 판 · 검사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그 시간도 불과 1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법원가의 관심사였던 이진성 서울중앙지법원장(연수원 10기)은 법복을 벗지 않기로 입장을 최종 정리했다. 사법연수원 2년 후배인 박병대 대전지법원장(12기)이 대법관에 제청되면서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이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을 빼곤 현역 최고참인 구욱서 서울고법원장(8기)도 이날 "(변호사법 적용을 피해) 사직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임제한을 피하려고 조기 사직하면 전관예우가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동명 의정부지법원장(11기)은 지난 9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후배 법관에게 추월되면 그만두겠다는 평소 생각에 따라 사직서를 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판 · 검사들의 사퇴 여부가 도마에 오르자 대법원과 법무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변호사법 개정안 시행 전까지는 판사와 검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법 시행 직전에 사표를 수리해줄 경우 판 · 검사들에게 전관예우를 받을 길을 열어줬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제처도 이런 논란을 의식,이르면 17일 관보에 게재해 법 시행을 앞당기려 하고 있다.

대법원의 입장 정리가 있기 전까지 연수원 10~12기 고참 법관 상당수가 거취를 놓고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방 법관 가운데 사직의사를 밝힌 판사들이 다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발빠른 판사들은 이미 지난 2월 정기인사를 전후해 대거 법원을 빠져나갔다. 당시 이례적으로 현역 판사 12명이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간 것도 변호사법 개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검찰에서도 이날 법무부의 방침결정 전 재경 지검의 부장검사와 부부장검사 등 6~7명이 사직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 · 수원 등 수도권에도 사의를 표시한 검사는 있었다. 다만 8월 말 검찰총장 교체를 앞두고 있어 검사장급 등 고위직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