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뒤집어 읽기] 인간보다 빠르게 新대륙을 접수한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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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세계화
치열한 경쟁통해 진화한 구대륙 생물
신대륙 '약자' 누르며 순식간에 퍼져
인류의 이동 '생태계 교환' 일부일 뿐
치열한 경쟁통해 진화한 구대륙 생물
신대륙 '약자' 누르며 순식간에 퍼져
인류의 이동 '생태계 교환' 일부일 뿐
근대 세계사의 특징 중 하나는 대륙 간 대규모 인구 이동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동이야 원시시대부터 늘 있었지만,근대에 들어와 원양 항해가 가능하게 된 이후부터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초장거리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각지에 화교촌을 건설했고,1000만명이 넘는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에 끌려가 일하게 됐으며,유럽인들이 미국과 캐나다,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곳으로 이주해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점은 사람의 이동이 다른 생물종의 이동과 병행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양한 동식물,심지어 병원균이 인간과 함께 먼 곳으로 이주해 갔다. 그 가운데 특기할 사항이 잡초의 세계적 확산이다.
우선 몇 가지 통계를 보자.캐나다의 농지에서 볼 수 있는 잡초 가운데 60%는 유럽 원산이다. 미국의 잡초 500종 가운데 258종이 구세계 원산이며,그 중 177종은 유럽 원산이다. 호주에서는 귀화 식물의 총수가 약 800종인데 아메리카 · 아시아 · 아프리카에서 온 것도 있지만 다수는 유럽산이다. 구대륙(유럽 · 아시아 ·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아메리카 · 호주 · 뉴질랜드)으로 많은 식물들이 이주해 가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그 반대 방향으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두고 한 식물학자는 "식물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생태계의 규모로 설명할 수 있다. 구대륙은 신대륙에 비해 생태계 자체가 엄청나게 크다. 따라서 수억 년 동안 생물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며 진화했고 그 결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종만 살아남았다. 이에 비해 생태계 규모가 훨씬 작은 신대륙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살아온 나머지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두 '유순한' 성격이 된 것이다.
대양에 의해 격절된 상태로 장구한 시간을 살아오던 세계 각지의 생물들은 15세기 이후 인간의 급속한 해양능력 발전으로 인해 갑자기 조우하게 됐다. 그 결과 구대륙의 강자가 신대륙에 들어가 약자들을 누르며 퍼져 나간 것이다. 구대륙의 식물들은 신대륙에서 '잡초'처럼 퍼져 나갔다.
근대 식물학 용어에서 잡초란 메마른 토양에서 급속히 퍼져 나가고 다른 식물들보다 훨씬 빨리 자라는 식물들을 가리킨다. 특이한 점은 구대륙에서는 통상 잡초라고 볼 수 없는 식물들까지 신대륙에서 그런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무가 잡초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인도제도에는 유럽의 오렌지가 들어와서 나무로 자라난 다음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복숭아가 미국 남부 지방에 들어갔을 때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이나 스페인인들이 플로리다로 들여온 복숭아가 북쪽으로 퍼졌을 것이다. 복숭아를 먹고 버리면 씨에서 무성하게 싹이 터서 아주 빠른 속도로 넓은 지역을 복숭아밭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영국인 탐험가들이 캐롤라이나로 처음 들어갔을 때 이미 그곳에 유럽인보다 복숭아가 먼저 퍼져서 원주민들이 복숭아를 겨울 양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구대륙 풀들은 신대륙에서 놀라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1749년 기록에 의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에 엉겅퀴 종류인 카르도 데 카스티야가 확산되고 있었는데,80년 뒤 다윈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남미의 많은 지역에서 이 풀이 너무나 울창하게 자라 말이나 사람이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게 된 지역이 수백만 평방 마일에 이르렀다. 어떤 종류의 엉겅퀴는 말을 탄 사람 높이만큼 키가 자라나기도 했다. 당시 기록은 팜파의 외래종 식물들이 "쥐나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표현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경작지를 만들고 재목을 구하기 위해 숲을 개간해 갔다. 또 소와 말,양 같은 가축을 들여와 길렀는데,이 동물들은 현지의 풀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발굽으로 짓밟는데다 배설물들을 뿌려서 점차 원주 식물들이 사라져 갔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나대지에 외래종 식물들이 급격하게 퍼져 간 것이다. 외래종 식물 가운데 예컨대 김의털처럼 극단적인 경우 1㎡ 당 22만개의 어린 식물이 자라기도 하고,어떤 식물은 0.0001g의 초경량 씨앗을 만들어 미세한 공기 흐름으로도 멀리 날아갔다. 이런 풀들은 정말로 근절하기 어려운 잡초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풀들이 온 세상을 뒤덮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잡초는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온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이들은 불안정한 땅을 장악하면 그 토양을 안정시키고,태양의 뜨거운 광선을 차단하며,결국 다른 식물들이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든다. 그리고는 느리지만 더 크고 억세게 자라는 식물들에게 점차 자리를 내 준다. 말하자면 잡초는 생물계의 적십자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불안정한 곳에서 응급조치를 취하지만 생태계가 안정된 상태가 되면 오히려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므로 사실 잡초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흉악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근대사는 인간의 이주와 정복,교류와 전쟁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은 생태계의 교환이라는 더 큰 전체 흐름의 일부분에 해당한다. 가축과 작물,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야생 동식물들,거기에 더해 각종 세균들이 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갔다. 인간의 세계화만큼이나,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잡초의 세계화였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각지에 화교촌을 건설했고,1000만명이 넘는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에 끌려가 일하게 됐으며,유럽인들이 미국과 캐나다,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곳으로 이주해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점은 사람의 이동이 다른 생물종의 이동과 병행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양한 동식물,심지어 병원균이 인간과 함께 먼 곳으로 이주해 갔다. 그 가운데 특기할 사항이 잡초의 세계적 확산이다.
우선 몇 가지 통계를 보자.캐나다의 농지에서 볼 수 있는 잡초 가운데 60%는 유럽 원산이다. 미국의 잡초 500종 가운데 258종이 구세계 원산이며,그 중 177종은 유럽 원산이다. 호주에서는 귀화 식물의 총수가 약 800종인데 아메리카 · 아시아 · 아프리카에서 온 것도 있지만 다수는 유럽산이다. 구대륙(유럽 · 아시아 ·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아메리카 · 호주 · 뉴질랜드)으로 많은 식물들이 이주해 가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그 반대 방향으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두고 한 식물학자는 "식물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생태계의 규모로 설명할 수 있다. 구대륙은 신대륙에 비해 생태계 자체가 엄청나게 크다. 따라서 수억 년 동안 생물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며 진화했고 그 결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종만 살아남았다. 이에 비해 생태계 규모가 훨씬 작은 신대륙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살아온 나머지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두 '유순한' 성격이 된 것이다.
대양에 의해 격절된 상태로 장구한 시간을 살아오던 세계 각지의 생물들은 15세기 이후 인간의 급속한 해양능력 발전으로 인해 갑자기 조우하게 됐다. 그 결과 구대륙의 강자가 신대륙에 들어가 약자들을 누르며 퍼져 나간 것이다. 구대륙의 식물들은 신대륙에서 '잡초'처럼 퍼져 나갔다.
근대 식물학 용어에서 잡초란 메마른 토양에서 급속히 퍼져 나가고 다른 식물들보다 훨씬 빨리 자라는 식물들을 가리킨다. 특이한 점은 구대륙에서는 통상 잡초라고 볼 수 없는 식물들까지 신대륙에서 그런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무가 잡초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인도제도에는 유럽의 오렌지가 들어와서 나무로 자라난 다음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복숭아가 미국 남부 지방에 들어갔을 때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이나 스페인인들이 플로리다로 들여온 복숭아가 북쪽으로 퍼졌을 것이다. 복숭아를 먹고 버리면 씨에서 무성하게 싹이 터서 아주 빠른 속도로 넓은 지역을 복숭아밭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영국인 탐험가들이 캐롤라이나로 처음 들어갔을 때 이미 그곳에 유럽인보다 복숭아가 먼저 퍼져서 원주민들이 복숭아를 겨울 양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구대륙 풀들은 신대륙에서 놀라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1749년 기록에 의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에 엉겅퀴 종류인 카르도 데 카스티야가 확산되고 있었는데,80년 뒤 다윈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남미의 많은 지역에서 이 풀이 너무나 울창하게 자라 말이나 사람이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게 된 지역이 수백만 평방 마일에 이르렀다. 어떤 종류의 엉겅퀴는 말을 탄 사람 높이만큼 키가 자라나기도 했다. 당시 기록은 팜파의 외래종 식물들이 "쥐나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표현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경작지를 만들고 재목을 구하기 위해 숲을 개간해 갔다. 또 소와 말,양 같은 가축을 들여와 길렀는데,이 동물들은 현지의 풀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발굽으로 짓밟는데다 배설물들을 뿌려서 점차 원주 식물들이 사라져 갔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나대지에 외래종 식물들이 급격하게 퍼져 간 것이다. 외래종 식물 가운데 예컨대 김의털처럼 극단적인 경우 1㎡ 당 22만개의 어린 식물이 자라기도 하고,어떤 식물은 0.0001g의 초경량 씨앗을 만들어 미세한 공기 흐름으로도 멀리 날아갔다. 이런 풀들은 정말로 근절하기 어려운 잡초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풀들이 온 세상을 뒤덮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잡초는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온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이들은 불안정한 땅을 장악하면 그 토양을 안정시키고,태양의 뜨거운 광선을 차단하며,결국 다른 식물들이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든다. 그리고는 느리지만 더 크고 억세게 자라는 식물들에게 점차 자리를 내 준다. 말하자면 잡초는 생물계의 적십자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불안정한 곳에서 응급조치를 취하지만 생태계가 안정된 상태가 되면 오히려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므로 사실 잡초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흉악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생태계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근대사는 인간의 이주와 정복,교류와 전쟁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은 생태계의 교환이라는 더 큰 전체 흐름의 일부분에 해당한다. 가축과 작물,혹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야생 동식물들,거기에 더해 각종 세균들이 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갔다. 인간의 세계화만큼이나,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잡초의 세계화였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