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날라갓'을 방문한 뒤에야 진정으로 말하고 듣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

이스라엘의 날라갓센터를 찾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2007년 설립 이래 200만명이 다녀간 이곳은 80명 이상의 시각,청각 혹은 시청각 중복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40여명의 직원이 함께 꾸려가는 비영리 극단이다. 날라갓(Nalaga'at)은 히브리어로 '만지다'라는 뜻.이곳의 설립자이자 총예술감독인 아디나 탈(사진)이 최근 경기도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에이블아트심포지엄'을 찾았다. 지난 3월 대표작 '빵만으론 안돼요'의 500회 공연을 마친 이들은 제10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개막작으로 초청받아 2회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12년 전이었습니다. 내게 누군가 '두 달만 시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을 해달라.특별한 결과도 기대 않는다. 장애 그룹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며 저를 설득했죠.그게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

스위스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이스라엘로 이주한 아디나 탈은 유대학과 연극을 공부했다. 1999년 한 시청각 중복 장애그룹을 위한 워크숍을 계기로 텔 아비브 자파 지역에 비영리 조직인 날라갓센터를 설립했다. '빵만으론 안돼요' '빛은 지그재그로 들린다'를 제작,감독해 이스라엘 법무부로부터 평등기여상,보스턴 의회로부터 우수작품 표창 등을 받았다.

"처음엔 절망적이었어요. 둘러 앉아 워크숍을 하는데,3개월째 되던 때 어떤 배우가 그러더군요. 이건 바보짓이라고.우리가 어떻게 배우가 될 수 있겠느냐고.하지만 저는 곧 희망을 발견했어요.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모방할 수 없고,그래서 모든 연기가 다 개성적이더군요. 비장애 배우들에겐 불가능한 일이고,또 위대한 발견이었죠."

날라갓센터는 레스토랑,카페,극장을 동시에 운영하며 예산의 70% 이상을 자체 수익에 의존한다. 비언어 음악극 '빵만으론 안돼요'는 미국,캐나다,유럽 등을 돌며 500회 공연을 마쳤다. 공연은 항상 매진이다.

"청각장애 종업원이 서빙하고 수화로 소통하는 커피숍 '카피쉬'와 시각장애 종업원들이 암흑 속에서 아주 특별한 저녁 식사를 인도하는 암흑 레스토랑 '블랙아웃'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성공적인 모델이 됐습니다. 어떤 후원도 받지 않아요. 여기에서 일을 시작한 장애인들이 서서히 배우 훈련을 받아 무대에 섭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화 워크숍도 하고요. 지금까지 200만명이 다녀간 이스라엘의 대표 공연이 됐죠."

제과점을 배경으로 하는 '빵만으론 안돼요'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반죽하고 빵을 굽는다. 관객들이 무대 위로 초대돼 막 구워진 빵을 나눠먹기도 하고 광대놀음을 함께하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문다.

한국 공연 이후 미국 장기 투어를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BBC,CNN 등에 크게 보도됐고,다큐 영화로도 촬영 중이다.

"배우 한 명당 도우미가 한 명씩 붙어요. 연기할 차례가 되면 등을 건드려주는 방식으로 순서를 알려주죠.전체 동작이 들어갈 땐 북을 쳐줍니다. 북 소리는 못 들어도 공기를 타고 오는 진동을 느낄 수 있거든요.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