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의 뇌성마비 환자인 보비아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해 죽음을 앞당기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병원 측은 그에게 영양제를 주입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대해 보비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평화로운 죽음'이라며 법원에 제소한다. 의학적 소견과는 상관없이 환자와 그의 가족이 죽음 혹은 죽임을 원하는 상황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법정에 선 과학》은 풍부한 판례들을 통해 오늘날 과학적 진리와 사법적 정의에 관한 지적 전환점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법리적 혹은 과학적 사실들이 사회 정치적인 맥락과 맞물려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당한 사례들을 통해 살아 있는 법과 과학,정의에 대해 일깨워준다.

가령 미국 경제교류재단은 국방부의 생화학 무기 실험용 설비를 짓는 계획에 대해 환경영향 평가가 안 됐다는 이유로 건설 중지 소송을 내 이겼지만 서리방지용 박테리아 현장 실험을 중단하라는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당사자 자격이 부족한 데다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피해 입증이 불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책은 또 사법 체제가 늘 과학의 꽁무니만 좇는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위험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생산 · 유통되고 있는 유전자변형 식품에 대한 문제를 사법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이처럼 법과 과학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을 알려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