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시장이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은(銀)이 맨 앞자리에 있다. 지난주 은값은 27% 폭락했다. 투기에 대한 규제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모기업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최근 선물거래 증거금을 네 차례에 걸쳐 대폭 인상했다. 올 들어서만 60% 급등한 은값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번주 초 반짝 반등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11일엔 다시 급락했다. 상품시장의 진폭에 따라 증시도 춤추고 있다.

31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오일쇼크 여파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종이(화폐)'를 버리고 실물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금 은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과 미술품 가격이 치솟았다. 은값 급등 '배후'엔 상품투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텍사스 석유재벌 헌트 형제가 있었다. 1974년부터 은을 사모으기 시작한 이들은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2명과 투자회사를 차려 본격적인 은 사재기에 나섰다.

헌트 형제는 수십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거부였지만 자기 돈이 아니라 증권사와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은 선물에 투자했다. 이들이 매수한 은의 규모는 전 세계 유통 물량의 3분의 1을 넘었고 투자가치는 100억달러에 달했다. 1979년 8월 온스당 10.61달러였던 은값은 1980년 초 5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COMEX는 은 선물 포지션 청산을 위한 거래만 허용하고 증거금을 두 배로 올렸다. 이 여파로 은값은 그해 3월27일(목요일)부터 시작해 4일 만에 70% 폭락했다. 이른바 '은의 목요일(Silver Thursday)'사태다. 이들에게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들도 휘청거렸다.

최근 상황은 그 때와 다르다고 하지만 어딘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 경제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나게 풀린 돈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미 달러화의 약세 전망 등이 그렇다. 2011년 은시장에 헌트 형제는 없지만 대신 다수의 헤지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들이 있다.

문제는 늘 가격이 많이 올라 위험신호가 켜질 때쯤 개인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든다는 점이다. 중국에선 개인들의 금과 은 투자열풍에 은행 귀중품 보관함이 동이 날 지경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원자재 값이 올라 관심이 높아지자 금 · 은 등 귀금속에 투자할 수 있는 금융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일부에선 가입 이벤트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남들이 큰 돈을 벌었다니까 무조건 따라하는 '묻지마 투자'는 투자(投資)가 아니라 투기(投機)다. 현실적으로 둘을 구별하긴 쉽지 않다. 가격이 올라 돈을 벌기를 기대하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의 한 인사는 5년 전 금값이 온스당 550달러일 때부터 '투자'해 왔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미 달러화 약세와 금값 강세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멀리 내다보고 장기 상승추세를 믿는다면 변동성 큰 상품에라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자'를 했다면 최근과 같은 롤러코스터 장세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주관적 기준이긴 하지만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려면 스스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만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크게 한방'을 꿈꾸며 남의 돈까지 빌려 위험자산에 베팅한다면 '투기'를 넘어 '도박'과 다를 바 없다.

박성완 증권부 차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