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주요 도시의 대중교통과 물류는 '올스톱'됐다. 버스 기차 등이 하루 종일 멈춰 섰고,항공기도 4시간가량 운행을 중단했다. 그리스 양대 노총인 공공노조연맹과 노동자총연맹이 정부의 임금 · 연금 삭감,공기업 구조조정 등에 항의해 24시간 총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1년 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재정 긴축을 약속했다. 그리스 노동자들은 구제금융 신청 후 지금까지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해 아홉 차례에 걸쳐 총파업을 벌였다. 이날도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최소 25명이 다쳤다.

그리스 사태는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에선 IMF가 권고한 긴축안을 받아들여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때도 노동계의 반대가 있었지만 국가를 위해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국민들은 구제금융 조기 상환을 위해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였다. '내 임금과 연금이 줄어드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파업을 벌이는 그리스 노동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정부 부채비율은 GDP 대비 143%로 유로존 최고 수준이다. 정부 예산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사회복지 예산이고,퇴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의 5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한다.

그리스 양대 정당인 사회당과 신민주당은 그동안 '표'를 얻기 위해 공공부문 지출을 담보로 하는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냈다. 공무원이 늘어나고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조기 퇴직 후 연금을 받는 게 유행처럼 돼 버렸다. 빨리 퇴근하려는 공무원들 때문에 대표적 관광지인 파르테논 신전이 오후 3시께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문제는 이것이 그리스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78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포르투갈과 재정적자 비율이 GDP 대비 9.24%를 기록한 스페인에서도 지난해부터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적자국가 국민들이 고통분담을 거부한다면,유럽의 진정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태훈 국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