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이 국무회의에 대거 불참하거나 지각한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하필 이명박 대통령이 유럽 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의 일이다.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지금의 내각 의사결정 시스템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우리는 본다.

이 대통령이 각부 장관들의 목줄을 바짝 당기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대통령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국정 각 분야 업무를 직접 챙긴다. 세세한 수치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때문에 웬만한 장관은 버티기 어렵다. 언제나 큰형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윤증현 전 장관도 초반에 당일의 환율을 파악하지 못하고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혼났다는 정도다. 거의 모든 수석과 장관들은 이 대통령의 예리한 질문에 쩔쩔매게 되고 풍부한 지식에 혀를 내두른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러다 보니 국정 현안이 그 무엇이든 간에 대통령의 토론과 재가를 거치지 않고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대통령이 없으면 진도를 나갈 수도 없다. 장관들의 국무회의 무더기 불참은 이런 상황에서라면 당연한 결과다. 어차피 대통령이 돌아와야 일이 돌아간다. 바로 이것이 지금 청와대가 빠져 있는 함정이요 미궁이다. 해도 해도 일감이 밀려드는 것은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거의 모든 독재자는 밀려드는 일감 때문에 필연적으로 과로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윗분의 지시와 결정이 없으면 그 누구도 결정할 수 없다. 대통령의 책상에 점점 더 많은 문서가 쌓이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포퓰리즘적 정책이 많아지는 것도 청와대의 일하는 방식 때문일 수 있다.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당장 구체적 대책을 내놓기를 요구하다 보면 자연히 장관들은 시장의 목을 비틀게 된다. 시장에 맡겨두면 점차 자리를 잡아갈 일도 정부가 일단 개입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손을 빼기도 어려워진다. 갈수록 큰 정부가 되는 이유다.

장관들에게 결정권을 되돌려주는 것이 옳다. 봉숭아 학당 같은 이야기지만 장관들이 책임을 지고 소신껏 일하도록 하면 그만이다. 민간 기업에선 전결권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다. 정부에서는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