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귀금속 곡물 등 상품 가격이 경기지표와 수급 상황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지난 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6월물은 한 달 반 만에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하루 낙폭이 8.6%로 2009년 4월 이후 최대였다.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 수 증가 소식이 악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다음 거래일인 9일 WTI는 5.5% 급반등했다. 4월 신규 일자리 수가 11개월 만의 최대라는 정반대 지표 때문이었다. 11일엔 또다시 5.5% 폭락했다. 원유 재고량이 예상보다 크게 늘었다는 소식에 반응했다. 유가가 갈짓자로 출렁이는 셈이다. 이 같은 급등락은 귀금속과 곡물 시장도 마찬가지다.

◆투기 몰려 수급변화에 과잉반응

고공행진하던 상품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4월 말부터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가 예정대로 오는 6월로 끝나는 데다 중국 긴축,유럽 재정위기가 지속되면서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돼 상품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다. 여기에 거래 규제,기후,달러 가치의 변동성 확대 등이 겹치면서 상품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됐다. 헤지펀드와 개미투자자 등이 상품 투자대열에 대거 뛰어든 것도 시장의 변동성을 키웠다.

11일 NYMEX에서 휘발유 선물 폭락으로 발동한 '서킷 브레이커'는 WTI 가격도 끌어내렸다. 마켓워치는 "원유 휘발유 난방유 세 품목 중 하나만 거래가 일시 정지돼도 이후 그날의 가격 제한폭이 세 품목 모두 확대돼 동반 급등락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주 NYMEX는 원유 거래 증거금을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총 51.8% 올렸다.

'불확실성=안전자산 선호=금 · 은 가격 상승'이란 등식도 무너졌다. 이날 NYMEX에서 금 6월물 가격은 온스당 1501.40달러로 전일 대비 1.0% 하락했고 은 7월물 가격은 7.7% 급락해 35.52달러로 떨어졌다. 유로화 대비 달러화가 강세여서다. 1주일 새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1.4821달러(4일)에서 11일 1.4202달러로 떨어졌다. 4.2%나 내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지난달 말부터 2주간 은 거래 증거금을 83.9% 올리는 등 규제를 강화한 것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대세 하락이냐 일시 조정이냐

상품 시장 전망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세계 경기 둔화로 본격적인 하락장에 들어섰다는 신중론이 나오는 반면 일시적인 조정일 뿐이라는 의견도 많다.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닥터 둠'이란 별칭을 가진 마크 파버는 "중국의 통화 공급량이 미국을 넘어설 정도로 증가한 것은 중국의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상품 가격의 추가 하락을 예견하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최근 조지 소로스와 존 버뱅크 등이 운용하는 헤지펀드가 상품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금과 은을 내다 팔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상품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최근 로이터인사이더TV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는 상승장(bull market)에 있다"며 원자재 급락에 대해 "특별할 것이 없다. 조정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은을 더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나 귀금속 등 희소성이 있는 상품 가격은 일시적인 시장 조정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며 "석유 매장량이 점차 줄어들 듯 새로운 공급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이체방크는 "경제 지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을 찾는 욕구가 강해져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업관련 리서치회사인 래보 애그리파이낸스의 스털링 리델 부사장은 "올해 작황이 좋지 않으면 옥수수값은 부셸당 6.77달러에서 8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