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중 급사한 골프광이 연옥에 도착하자 수문장이 말했다. "천당과 지옥 중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 먼저 지옥에 가보니 융단 같은 페어웨이에 아름드리 나무,맑은 호수,기막힌 코스의 골프장이 있는 게 아닌가. 당장 플레이를 하겠다고 하자 수문장은 지옥에 남겠다는 약속을 하기 전에는 안 된다고 딱 잘랐다. 볼 것도 없이 지옥을 택했다.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서 연습 스윙을 하고 티를 꽂은 다음 골프공을 달라고 하자 수문장이 대답했다. "공은 천당에만 있네."

14세기의 골프공은 너도밤나무 느릅나무 등을 깎아 만들었다. 공이 제멋대로 날아다녀 골프라기보다는 '자치기'에 가까웠을 게다. 17세기엔 소나 말가죽 안에 오리털을 채워 넣은 '페더볼'이 등장했다. 숙련된 기술자가 하루 서너 개밖에 만들지 못해 클럽보다 비쌌단다. 꿰맨 곳이 터지기 일쑤고 모양도 일그러져 2라운드 이상 쓰기 어려웠다. 고무 골프공이 개발된 건 19세기 중반이다. 1848년 런던 블랙히스대회에서 처음 쓰인 '구티볼'은 몰딩 제조방식으로 대량생산된데다 내구성이 좋아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요즘 골프공은 신기술과 첨단과학의 산물이다. 극미세 가공의 나노기술이 적용되는가 하면 탄성을 높이기 위해 감마선까지 쪼인다. 공기 역학이론을 접목시켜 비거리를 늘리고,우레탄이나 실리콘 커버를 씌워 스핀량을 조절한다. 골프공 특허만 1500개가 넘을 정도다. 비거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딤플이다. 표면의 촘촘한 홈이 날아갈 때 공기저항을 줄이고 양력도 만든다. 야구공에 108개의 실밥을 둔 것과 같은 이치다. 딤플 수는 350~500개가 보통이지만 1000개가 넘는 공도 있다. 모두 공을 멀리,똑바로 날리기 위한 기술들이다.

급기야 미국에서 빗맞아도 똑바로 나가는 골프공이 나와 공인구 논란이 일고 있다. 딤플을 조절해 슬라이스와 훅을 75% 이상 방지한다는 '폴라라 공'이다. 시도 때도 없는 슬라이스에 한 맺힌 아마추어들은 환호하지만 미국골프협회는 골프 본질에 어긋난다며 결사 반대란다.

골프의 묘미를 느끼려면 공을 바꿀 게 아니라 샷을 교정하라는 협회의 주장이 백번 옳다. 하지만 게임보다 여유와 담소에 무게를 둔다면 가끔 써 볼 만도 하겠다. 라운드할 때마다 공을 '한 다스'씩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것보다는 좀 나을 게 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