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짜임금' 억지 버려라
최근 노동계의 움직임이 긴박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다시 개정하라며 투쟁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호응해 야당은 조만간 노조법 재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 한다. 4 · 27 재 · 보선 때처럼 내년 총선 · 대선에서도 노동계가 지지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리라.

노동계 주장의 핵심은 두 가지다.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를 폐지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을 노사자율로 지급하라는 것과 복수노조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폐지하고 자율교섭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타임오프와 창구단일화는 2010년 초 개정된 노조법에 의해 새로 도입됐다. 이 중 타임오프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고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노동계 요구대로라면 두 제도 중 하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다른 하나는 출산예정일을 받아놓고 태어나지 못하게 된다.

노동계는 타임오프가 "노조활동 전반을 크게 위축시키고 노사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비판한다. 또 교섭창구 단일화가 "교섭권을 봉쇄하는 것은 명백히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들 제도가 노동계 주장처럼 문제가 있을까.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문제는 노사간 첨예한 입장 차이로 13년간 해결하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이었다. 이를 풀고자 2009년 노 · 사 · 정 간 치열한 논의와 협상이 있었고 마침내 노 · 사 · 정 합의로 타임오프와 창구단일화가 해법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런 경위를 잘 아는 노동계가 이제 와서 재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난센스다.

타임오프가 노동계 주장처럼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가? 사용자로부터 공짜 임금을 받는 노조전임자가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면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타임오프는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으로 돌아가자는 제도다. 만일 노조원이 노조활동 위축을 바라지 않는다면 스스로 조합비를 더 내서 전임자를 두면 될 일이다. 타임오프를 탓하는 것은 사용자로부터 공짜 임금을 받던 잘못된 옛날로 돌아가자는 떼쓰기에 다름 아니다.

타임오프가 노사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노조가 타임오프를 법대로 지킨다면 노사 갈등이 발생할 까닭이 없다. 한쪽이 법을 어기려 하니 법을 지키려는 기업이나 정부와 갈등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단체교섭권을 봉쇄하는 위헌적 제도일까? 노조법은 사용자와 교섭할 노조 창구를 하나로 모으도록 하고 있다. 복수노조의 폐해를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사용자가 여러 노조와 각각 교섭해야 한다면 1년 내내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법으로는 근로자 두 명만 모여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 법에는 한편으로 소수노조가 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다. 소수노조가 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는 사용자가 아니라 다수노조로부터 버림받은 때다.

창구단일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생뚱맞은 제도가 아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선진국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타임오프가 노사관계를 갈등으로 몰고 있다는 노동계 주장이 무색하게도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평화롭게 정착되고 있다. 이미 86%의 기업에서 타임오프 도입에 합의했고 99%가 법정한도를 준수하고 있다. 노조법 재개정은 명분이 없을 뿐더러 현장과도 동떨어진 요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임오프와 창구단일화가 노사 모두에게 흡족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라는 해묵은 난제를 풀 수 있었다. 또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한걸음 내딛게도 됐다. 이제는 노 · 사 · 정이 함께 제도 정착에 더욱 노력할 때다. 노동계와 정치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이동근 <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