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31)는 A증권사의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애널리스트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다. 그가 A증권사로 옮겨온 것은 지난달.그전까지는 대형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업무만 보면 애널리스트지만 규정을 따지면 애널리스트가 아니다. 금융투자협회가 올해부터 다른 업종에서 이직해온 사람의 경우 금융투자분석사 시험에 합격해야만 애널리스트로 등록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는 7월에 실시되는 해당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애널리스트 아닌 애널리스트로 지내야 한다.

A증권사는 이런 사실을 뻔히 알고도 김씨를 영입했다. 증권가의 애널리스트 인력난으로 마땅한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였다. 비단 A증권사만이 아니다. 신한금융투자 SK증권 등 주요 증권사에는 조선 · 기계,화학 등 주요 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가 없다. 애널리스트가 이직한 이후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증권가의 인력난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널리스트로 육성하기 위해 채용한 '애널리스트 보조(RA)'가 증권사마다 10~20명씩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RA업무를 2년 이상 맡아야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1년으로 완화됐다. 이들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리서치 부서에 들어왔다. 이들을 잘 키워 애널리스트로 육성하면 될 듯한데,증권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기실적 때문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리서치 헤드의 임기는 고작 1~2년가량"이라며 "이 기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기존 애널리스트나 해당 업종 전문가를 영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서치센터의 실적은 다름아닌 '주문 증가'다. 훌륭한 리포트를 내고,펀드매니저들이 이를 근거로 주문을 내면 실적은 쭉 올라간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업종의 정보와 인맥을 가진 애널리스트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른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분석 능력이 좀 떨어지더라도 해당 업종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 일고 있는 애널리스트 인력난은 본연의 임무인 기업 분석보다는 영업활동을 더 중시하는 증권사들의 단기 성과주의가 빚어낸 현상인 것 같아 씁쓸하다.

노경목 증권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