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래플리 전 P&G 회장은 "사자가 사냥하는 법을 보려면 동물원이 아닌 정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공간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관찰해야 사자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이 소비자를 관찰할 때도 마찬가지다. 틀에 박힌 설문조사로는 소비자를 파악하기에 한계가 있다. 길거리나 가정,일터 등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 소비자를 정확히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소비자를 관찰할 때는 소비가 이뤄지는 맥락,소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동,소비 동기 등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소비의 맥락,즉 소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이다. P&G는 1980년대 말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세정 효과를 발휘하는 '아리엘 울트라'라는 세제를 멕시코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제품은 불과 몇 달 만에 판매가 중단됐다. 당시 멕시코 주부들은 많은 양을 써서 거품을 내야 세탁이 잘 된다고 믿었는데 '아리엘 울트라'는 이런 믿음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제품에 대한 인식,거래 관행 등은 소비자의 판단과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업은 소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소비자 관찰의 두 번째 방법은 소비자의 행동과 신체반응을 인간공학과 생체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소비자의 행동을 동작 단위로 분석하면 신제품 개발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스웨덴 가전기업 엘렉트로룩스는 2004년 1500여 가구를 방문해 주부들이 청소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관찰 결과 주부들은 일반 청소기를 사용할 때는 본체가 너무 무거워 불편을 겪고,휴대용 청소기를 사용할 때는 허리를 자주 굽혔다. 엘렉트로룩스는 관찰 결과를 토대로 경량 무선청소기 '에르고라피도 2in1'을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소비자의 심층적인 소비 동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비자는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지만 때로는 스스로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 소비생활을 한다. 이런 심층적인 욕구는 생활 속의 행동을 관찰해야만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디자인 컨설팅회사 선드벅페라는 한 실버타운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보행보조기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었다. 하지만 설문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기존 제품에 불만이 없다는 응답을 내놓았다. 선드벅페라는 고민 끝에 주민들이 쓰고 있는 보행보조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조사 결과 보행보조기에 컵홀더를 달아놓은 사람도 있었고 뜨개질바구니를 붙여놓은 사람도 있었다. 소비자들이 겉으로는 불만이 없다고 했지만 각자의 필요에 따라 기존 제품을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드벅페라는 이 점에 착안해 망사 주머니가 달린 보행보조기를 개발했다.

관찰의 목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는 이미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현상을 과거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가치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고객을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선입견을 버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소비자를 바라보면 생각지도 못한 혁신의 실마리가 나타날 것이다.

이정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jungho7.lee@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