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원 전관예우도 있는데 뭘…대한민국은 관료공화국
대법관 1명은 매주 50건,한 달에 200건의 송사를 처리한다. 고된 일이다. 그런데도 숫자를 늘리자고 하면 펄쩍 뛴다. 대법관 출신인 김황식 총리의 회고로는 통상 70%에 이르는 기각률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경우 한 자리로 뚝 떨어진다. 김 총리는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다(재판 결과는 같다)"는 주장을 펴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어떻든 숫자를 늘리면 대법관의 값어치는 비례적으로 희석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퇴직 1년 안에 60억원을 번다는 말은 그렇게 나온다. 그렇게 돈이 춤추고 정의(正義)는 법정 밖을 배회하게 된다.

행정부처 전직(前職) 장관에는 연봉 5억원 이상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차관은 5억원 이하다. 로펌이나 회계법인은 그렇게 전직들을 매수한다. 어떤 전직은 10억원,다른 전직은 3억원이다. 10억원은 일을 해야 하고 3억원은 일을 안해도 준다. 10억원짜리 전직은 현직들에게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야 한다. 후배들은 욕을 하면서도 예,예! 하고 전화를 받는다. '일 안 하는 3억원'은 보험료다. 이들은 언제 장관으로 복귀할지 모른다.

로펌 고문이 요즘은 국장 선까지 내려왔다. 그만큼 전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공정위 금감원 재정부 등 규제행정 부처들은 지금이 전성기다. 로펌은 소송이 붙으면 아예 해당 부처의 담당국장을 스카우트해버리는 전략으로 재판을 승리로 이끈다. 김앤장은 최근 도이치뱅크를 조사했던 금감원 담당국장을 송사 중에 스카우트하려고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정말 화끈하고 담대하다. 정부 예산 지원으로 대학교수로 나가는 것은 관료들의 최후의 선택이다. 퇴로가 보장되지 않는 부처는 불만도 크다. 한국은행이나 감사원의 내부 긴장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은이 금융감독권을 나누어달라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전혀 없진 않을 테다.

관료들이 복잡한 규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퇴직 후 문전옥답을 가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현직은 규제의 칼을 휘두르고 전직은 그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선후배 간의 절묘한 궁합이요 협업이다. 그렇게 규제가 많을수록 갈아먹을 땅은 비옥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단체장들과 회동하는 보도사진에는 경제인이 아닌 전직 장관들의 얼굴이 더 많다. 민간 단체 대표를 전직 장관들이 차지하고 있는 장면은 코미디다.

5000억원 전관예우도 있는데 뭘…대한민국은 관료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미 관료공화국이다. 금감원 출신 저축은행 감사는 1억원 남짓에 1회 임기가 끝이다. 그러고도 이렇게 시끄러우니 하수(下手)다. 모피아의 윗선들은 아예 뒤탈 없는 은행으로 간다. 좌파 시민단체들이 철없이 규제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전직들의 단가는 높아간다.

사상 최고의 전관예우는 아마 보고펀드의 변양호 씨 경우일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다음 그 외환은행(론스타)으로부터 400억원을 보고펀드에 출자받았다. 그것도 1000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400억원으로 낙착을 봤다는 거다. 정부(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는 우리금융에서 1000억원을 또 받았고,한화로 팔려간 대한생명으로부터도 500억원을 출자받았다. 이런 식으로 5000억원의 펀드를 만들었다. 모피아가 아니면 불가능한 모금력이요,희대의 전관예우다.

덧붙이자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은 지금도 의문 투성이다. 당시 전현직 장차관 본인과 가족까지 대거 관련되어 있는 지극히 내밀한 사건이다. 자식과 조카와 사위들이 실명으로 등장하지만 지금은 침묵하는 것이 좋겠다. 변양호 씨는, 열심히 했다가 엉뚱한 책임을 쓰게 된 피해자라는 뜻의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말의 주인공까지 되었다. 이 고약한 단어는 관료들의 재량권 남용을 은폐하는 놀라운 조어력(造語力)의 창조물이다. 철없는 기자들이 베껴쓰면서 이 단어는 유행어가 됐다. 이렇게 전직 공화국은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다. 청와대나 정치는 결국 한통속이다. 시민들은 위조지폐라도 찍어야 하나.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