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ㆍ복지의료 동반성장의 길
노무현 정부 초기,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서에서 의료를 산업의료와 공공의료(복지의료)로 나누었다. 전자는 첨단의료산업으로 발전시키고,후자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수혜 범위를 넓히겠다고 했다. 아마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업의료에서 돈을 벌어 복지의료에 투자하겠다고 했던 그 정책의 모델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 하면 '주식회사 병원' '의사가 주주인 병원' 등이 우선 떠오르겠지만,사실 싱가포르 의료체계는 자국민의 75%에 대한 표준의료는 국공립 병원이 담당하고 있으며,나머지를 민간병원이 맡고 있다. 이들 민간병원이 사활을 걸고 외국인 환자와 의료관광객을 유치해,공공의료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싱가포르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다.

이론은 그럴 듯했지만 막상 집권해 마주친 현실은 녹록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은 할 수 없이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복지의료에 먼저 투자해 국민들을 안심(?)시킨 후에,영리병원이나 의료시장 개방 등 의료의 산업화를 추진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둘 다 해결하지 못하고,복지의료에 대한 어중간한 투자로 오히려 의료 서비스의 전체적인 경쟁력만 떨어뜨린 채 임기를 마감하고 말았다. 뒤를 잇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제시했지만 임기가 채 2년도 남지 않은 현재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이렇게 의료의 산업화가 어려운 까닭은 뭘까.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영리병원 논쟁만 봐도 의료경쟁 심화와 의료비 증가를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데,과연 그럴까?

의료와 사정이 비슷한 교육을 예로 들어보면,우리나라에 의료산업은 없으나 교육산업은 활발하다. 코스닥 시가총액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메가스터디는 무료로 방영되는 EBS 수능방송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욱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학습지 회사들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위 사교육 분야인 교육산업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통제하려 든다면 이런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의료를 첨단 서비스산업으로 발전시키려면 복지의료는 지금처럼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도록 해서 더 많은 국민들이 더 큰 혜택을 받도록 발전시켜 나가고,산업의료는 지식경제부로 옮겨 산업의 안목으로 지원하며 키워나가야 가능하다. 헤르만 지몬의 '히든챔피언-세계시장을 제패한 숨은 1등의 비밀'에 따르면,작은 니치마켓(틈새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던 중소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 한계를 느꼈을 때 비슷한 분야로 '업종다각화'를 하는 대신,세계로 눈을 돌려 '시장다각화'를 한 덕분에 독일에는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수많은 1등 강소기업이 존재하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생체간이식 등 장기이식을 비롯해 심장 암 척추 등 세계 최고수준을 달리고 있는 의료 분야가 상당히 있으며,세계를 '단일시장(one single market)'으로 보고 시장 다각화를 시도해 이런 분야를 집중 양성하면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1970~80년대 최고의 수재들이 지망했던 전자공학이 지금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듯이,90년대 이후 우수한 학생들이 가는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미래의 우리 사회를 짊어질 인재들이다. 첨단과학의 집약체라는 의료산업을 발전시켜 이들을 제대로 활용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더욱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산업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복지를 이룬다는 꿈은 실현될 수 있다. 서로 발목 잡지 않는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해 볼 때다.

백수경 < 인제대학원대 학장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