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이 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 이후 '한국형 헤지펀드'의 시대가 곧 열릴 것으로 모두가 기대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올해가 실질적인 '헤지펀드 원년'이 될 전망이다.

[헤지펀드가 온다] 기획시리즈를 통해 '한국형 헤지펀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와 운용철학, 운용특징, 다양한 매매전략, '한국형 헤지펀드'가 나아갈 방향 등을 9회에 걸쳐 짚어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반드시 제거돼야 할 '해적'과 같은 존재 아닌가요?", "하이에나 떼처럼 평온한 국제금융시장에 가격 변동성을 확대해 경제불안을 만드는 일등 주범이죠."

얼핏 보면 '무자비한 약탈자'다. 이 약탈자는 약 60년간 미국을 정복한 뒤 유럽, 일본 등 선진시장을 돌아 이제 막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해 안에 여의도 증권가(街) 한 복판에 등장할 약탈자는 이른바 '한국형 헤지펀드(Hedge Fund)'로 불린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헤지펀드를 바라보는 '단일민족'의 시선은 아주 따갑다. 일반투자자들은 물론 일부 전문가들까지 나서 약탈자의 손발을 묶어야 '한국경제의 재앙'을 막아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만 미국계 약탈자와 한국계 금융천재들의 '두뇌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오는 8~9월께 자본시장통합법 개정 이후 단계적(규제 완화 방안 등)으로 국내에 도입될 예정이다. '절대수익'을 놓고 벌어질 이 전쟁이 몇년뒤 '여의도 대첩(大捷)'으로 기록될 일만 남은 것이다.

◆헤지펀드는 정말 '공공의 적(敵)'인가?

헤지펀드 도입을 위해 준비(자본시장통합법 개정, 규제 완화 방안 등)중인 한나라당 기획재정 위원회는 지난 4월 정책토론회에서 "소비자 보호장치와 금융시스템 위험을 줄이는 장치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빗장이 열린다면 한국증시에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 한국형 헤지펀드를 극도로 경계했다.

한 백과사전에 실린 헤지펀드는 더 악랄한 존재다. '투자가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을 결성한 뒤 카브리해의 버뮤다제도와 같은 조세회피 지역에 위장거점을 설치하고, 자금을 운영하는 투자신탁이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을 교묘하게 조합해서 도박성이 큰 신종상품들을 개발하고 있다.'는 게 사전적 뜻이다.

이쯤되면 헤지펀드는 당연히 '불량한 펀드'로 낙인찍힐 법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 방향의 비난은 수많은 투자자들을 자칫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함정에 모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말 '헤지펀드의 경제적 의의와 제도 개선 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헤지펀드는 한 마디로 '위험해서 허용하면 안된다'는 인식이 관련시장에 팽배한 것일 사실"이라면서도 "그렇지만 헤지펀드가 평균적으로 가장 안전한 투자상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헤지펀드의 평균 연간 수익률>



실제로 영국의 시장조사 기관인 인터내셔널파이낸셜서비스런던(IFSL, 런던국제금융서비스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헤지펀드 관련 현황 집계를 개시한 1998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 열두해 중 단 한해(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한 11년간 '플러스 수익률'을 올렸다.

노 연구위원은 "예를들어 코끼리 한 마리를 놓고 보려면 한 눈에 몸통 전체를 놓고 봐야하는데 배, 다리, 코 등 부위를 나눠 보기 때문에 헤지펀드를 보는 시각이 단편적인 것 같다"면서 "헤지펀드는 시장의 방향성과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노리는 펀드로서, 10여가지의 다양한 투자전략에 따라 펀드의 특성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부 실패한 헤지펀드의 투자전략을 모든 헤지펀드의 실패로 동일시 해서는 안 될 것이란 얘기다.

미지의 '헤지펀드', 그들이 문제아가 된 이유

한국증시에서 헤지펀드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다.

한국계 금융천재들은 아직까지 헤지펀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공매도(무차입)와 레버리지를 활용한 롱/숏 운용전략(Long/Short Equity), 글로벌 매크로 운용전략(Global Macro), 선물 운용전략(Managed Futures) 등을 해 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헤지펀드의 국내 도입을 위해 열린 첫 공청회(2007년) 당시에만 해도 여의도 증권업계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더불어 2009년 헤지펀드의 도입은 기정사실화된 일이었다. 여의도가 마치 미국의 월 스트리트로 여겨진 것이다.

'여의도의 꿈'은 4년이 지나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헤지펀드'가 이제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라는 뜻을 지닌 '한국형 헤지펀드'로 약간 변신을 시도했고, 올해가 드디어 '헤지펀드 도입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가 그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불과 4년 만에 '블루오션'에서 '불랙오션'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헤지펀드 도입을 눈앞에 둔 2008년, 그 때까지 투자실패를 모르던 미국계 헤지펀드가 돈을 빌리던 투자은행(IB)들이 유동성 위기(서브프라임모기지)로 문을 닫으면서 국제금융시스템의 연쇄 붕괴 위기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2008년 카알라일 캐피털 사태가 그 예다. 당시 카알라일 캐피털은 모기지 대출금이 217억달러였으나, 이중 고객이 맡긴 돈은 6억7000만달러에 불과한 반면에 레버리지만 32배였다. 당연히 대출금 회수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헤지펀드는 아시아 증시에서 투자해놨던 자금을 모두 회수, 아시아증시는 잇따라 폭락했다.

1998년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 사태 역시 여태까지 관련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실패 실례다. LTCM의 당시 운용자산은 모두 800억달러, 레버리지 투자는 모두 1조2000억달러. 1994년 펀드설립 이후 연간 400% 수익률을 올리던 이 헤지펀드는 러시아 국가부도사태로 인해 1~2개월 만에 원금까지 모두 잃고 파산했다. 미국 정부는 LTCM 사태로 인해 35억달러를 긴급 투입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아냈다.

◆매니저와 증권업계, 투자자가 느끼는 '세 가지' 매력…왜 도입해야 할까?

대규모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를 향한 투자자들의 열망은 식을 줄 모른다. 특히 펀드매니저, 법인영업직원 등 관련업계 전문가들과 기관 및 일반투자자들이 바라는 이유에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직접 헤지펀드를 운용할 매니저들은 '수십억대 연봉'을 받아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헤지펀드=로또 1등'이란 등식의 성립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서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펀드운용보수(약 1~2%) 이외에 성과보수(15~20% 또는 최대 30%까지)까지 더 챙겨갈 수 있다.

기관투자가와 일반투자자들은 헤지펀드 도입 이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려주는 투자처가 생긴다는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금융전략그룹(KFSG)의 저서 '헤지펀드 운용전략과 활용방안(2009년 12월)'에 따르면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보유 자산 구성을 조정해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전통적 투자대상(기존 주식 및 뮤추얼펀드, 부동산, 은행예금 등)으로부터의 수익이 하락추세에 있는 가운데 기관투자자들이 계속해서 적극적 자산운용을 기피할 경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흐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렇듯 수익성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일부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헤지펀드를 기존 포트폴리오에 편입(펀드 오브 헤지펀드 등)함으로써 운용 수익률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를 활용하면 시장 하락기에 자산가치를 안전하게 보전하면서 시장 상승기에 초과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 관련업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전통적 투자대상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헤지펀드를 추가할 경우 투자다변화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들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정부 및 여의도 증권사들이 파악하고 있는 헤지펀드의 경제적 순기능은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이 순기능은 크게 금융투자자의 후생증진, 금융산업의 활성화, 금융시장과 자원배분의 효율성 제고, 기업의 효율성과 투명성 증진 등 네 가지다.

전문가들은 이 중에서도 기존 금융상품 대비 대체투자로 활용될 수 있다는데 방점을 찍어놨다. 아울러 새로운 비즈니스(프라임브로커, 수탁은행 등) 탄생이 가져다 줄 금융산업의 발전도 기다려지는 순기능이다.

여러 헤지펀드가 연합해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개입, 일부 불합리한 경영진들과 싸워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까지 적극 마련될 것이란 분석까지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장하성 펀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를 비롯해 우리투자증권이 2007년 세워 샘표식품에 투자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준 '마르스 1호' 등의 헤지펀드가 다수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소액주주들이 뭉쳐 부도덕한 경영진을 끌어내리고 기업의 가치를 스스로 올리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뜻하기도 한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